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10학년도 연세문화상 시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10학년도 연세문화상 시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3. 09:34

한지혁의 오래된 배, 스물, 기억 속의 너만이는 젊은이의 방황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시는 그 이상이다. 손선혁의 鬪病, 반달, 벙어리 시인등은 감정에 정직한 시다. 감정에 정직하다는 것은 감정을 그냥 노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진실성을 계속 되묻는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그것을 다양한 거울들에 비추어보는 대신에 감정 자체에 매달리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감정은 실감을 상실하고 관념화된다. 류설화의 겨울나무, () 와 비(), 강물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썩 세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데 그 멋진 말들이 생각과 감정의 상투성에 휘말려 단순한 수사적 장식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해준의 햇살의 해저에서, 화투연, 분자적인 개등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의 집요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다만 생각이 큰 관념들에 매달린 채로 그 내부로 섬세한 촉수를 들이밀질 못하고 있다. 우산마을 여인숙, 냉장고, 불두화등을 투고한 박석재는 시적 감수성을 타고났다. 그 감수성은 아직 세상과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가 민담의 수준에서 떠돌고 있다. 정상혁의 일필휘지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함께 투고한 선풍기, 금슬에서도 드러나지만, 말없는 물상에서 곡진한 삶의 내력을 읽어내고 그것에 강력한 열정의 에너지를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사소한 사물에서 존재의 의지를 캐내는 행위는 한국 현대시에서 매우 흔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칫 삶을 과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점을 유의하며 정진하기 바란다. 당선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