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526)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백무산이 오랫만에 시를 발표하였다(『창작과비평』, 1996 가을). 그의 시를 마지막으로 본 게 93년 가을(『실천문학』)이었다. 거기서 나는 빙하처럼 가득하고 날카로운 슬픔과 마주쳤었다. 고단하고 병치레를 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했다. 그 여인이 어려움에 처한 시인을 돌봐주었었다. 헌데 “안부전화를 했더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시인은 “한 마디 미안하다는 한 마디는/꼭 해야 할 것만 같았다”(「「슬픔보다 깊은 곳에」」). 그 말은 들어줄 청자를 찾지 못한 채로 울음 가득히 허공을 떠돌았다. 그러나 유령처럼 떠돌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초혼가처럼 퍼지고 퍼져 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시인의 가슴이 무너질 때 독자의 가슴도 에이었다. 그의 슬픔이 피를 흘릴 때 독자는 슬픔이란 얼..
남진우씨의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문학과지성사, 2006)는 “내 낡은 모자 속에서 / 아무도 산토끼를 끄집어낼 수는 없다”(「모자이야기」)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시인은 말한다. “내 낡은 모자 속에 담긴 것은 / 끝없는 사막 위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일 뿐.” 우리가 씨의 ‘낡은 모자’를 시의 비유로 읽는다면, 이 시구들은 하나의 시론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선언에 의하면 시인은 변신의 시가 아니라 유랑의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변신의 시란 은유로 가득 찬 시를 뜻한다. 그리고 은유로 가득찬 시란 대상과의 합일이 때마다 충만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유랑의 시에도 은유에 대한 꿈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변신의 시에서와는 달리 거기에는 즉각적인 동화가 일어나..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두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안보윤의 『밤은 내가 가질게』(문학동네, 2023.11)에 묘사된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인데, 사람들에게 가정되는 일반적인 속성이 박탈된 상태로 드러난다. 그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게, 본명 대신 특정한 약어로 불린다는 것이다. 이 약어들은 인물의 삶의 어떤 실제적인 계기와 연결된 소재들 중에서 우발적으로 선택된 호칭들이다. 그들은 ‘후두티’거나 ‘나무’ 혹은 ‘나무반’이다. 그러나 실제 이 우발적으로 선택된 호칭들은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다. 인물들은 다들 저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런 이름 하에 자신을 인식한다. 그럼에도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두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이주혜의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창비, 2023.11)은 현재 가족의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정신적 질환을 ‘일기 쓰기’를 통해서 치유하는 한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분노의 감정이 밤송이처럼 껍질을 뚫고 솟아나는 현재의 사건은 금세 뒤로 숨고, ‘일기’의 형식으로 인물의 지난 세월을 차분히 회상하는 과정이 매우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그 솔직함으로 이 소설은 198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의 사회적 환경과 정신적 정향을 추적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 충분히 쓰일만하다. 이 소설은 문학의 기능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제기한다. “..
놀랍게도 김정환이 속내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순금의 기억』(창작과비평사, 1996)에서 그는 마침내 말한다. 역사는 결코 생의 축적이 아니라고. 역사는 단지 썩은 자궁에서 분만된 고름덩어리라고. 그저 지리멸렬일 뿐이라고. 민중은 헐벗은 만큼 물들지 않았다는 순수의 역설로 군사정권의 압제에 대항해 살아냄의 윤리학을 맞세웠던 초기시나 민주화의 열풍 속에서 민중의 힘찬 진군을 “끈질기고, 길고/거무튀튀”한 기차에 비유한 나중 시들에 익숙했던 독자들은 잠시 아연할 법하다. 그러나, 본래 그는 역사를 믿지 않았다. 초기시의 그가 살아냄의 윤리를 왜 “숨가쁜 진실”,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는 “만남”이라고 말했던가. 그에게 살아냄은 지속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순간의 영역에 속했다. 그의 시는 서사시의 쪼가..
김지하가 해월과 증산에게서 전거를 끌어내며 ‘생명사상’을 제기했을 때, 그것은 순간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촉발시켰다가, 비과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는 이론가들의 비판과 함게 차츰 그 광도를 잃어왔다. 하지만 논의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도중에도 그것은 문학적 실천의 장에 은근하고 깊숙이 스며들어간 모양이다. 많은 작가·시인들이 의식적으로 ‘생명’을 화두로 삼는 경우를 여러번 목격할 수 있다. 이시영의 세 번째 시집 『길은 멀다 친구여』(실천문학사, 1994)의 시편들을 붙들어 매고 있는 주제 단위도 생명이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김지하의 생명과 다르며, 혹은 60년대의 생명주의 문학(박상륭·이세방)의 생명과도 다르다. 그 다름은 그것이 죽음과 맺고 있는 특이한 관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김지하의 생명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