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치유로서의 일기 - 이주혜의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치유로서의 일기 - 이주혜의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비평쟁이 괴리 2024. 2. 28. 10:23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두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이주혜의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창비, 2023.11)은 현재 가족의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정신적 질환을 ‘일기 쓰기’를 통해서 치유하는 한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분노의 감정이 밤송이처럼 껍질을 뚫고 솟아나는 현재의 사건은 금세 뒤로 숨고, ‘일기’의 형식으로 인물의 지난 세월을 차분히 회상하는 과정이 매우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그 솔직함으로 이 소설은 198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의 사회적 환경과 정신적 정향을 추적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 충분히 쓰일만하다. 
이 소설은 문학의 기능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제기한다. “문학은 치료요법인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미술치료’, ‘음악치료’와 더불어 ‘문학치료’라는 말이 유행한지도 꽤 오래 되었고 학문 분야에까지 올라있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의아할 수도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근대(모더니티) 이후 문학(좀 더 넓혀 말해 자의식을 동반한 글쓰기)은 기존 현실에 대한 반성이자 낯선 세계에 대한 상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경향이 큰 줄기였다. 그런 움직임은 현실 안에 사람들을 안전히 적응시키는 ‘치유’의 그것과는 궤적이 다르다. 때로 그 다름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의 상태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특히 그 충돌은 현실 인식 혹은 묘사에 대한 믿음의 근거를 둘러싼 물음 위에서 터진다. 일기는 현실을 정직하게 복원하고 있는가? 주관적인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작품은 이 문제를 직접 제기하기도 한다. 기억은 자의적으로 선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자서전이라는 게 왜곡이나 날조로 흐르기 좋다.”(p. 256)는 점을 떠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주의가 여주인공의 일기에 투영되어야 할 터이다.
글의 치유력을 인정한다고 할 때, 과거를 다시 쓰는 일과 현재 문제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문제가 제기된다. 오늘의 가족의 위기는 그 피해자인 여주인공이 과거를 복기하는 일을 통해 해소될 수 있는가? 이 둘을 연결하는 유일한 ‘하나되는 표지trait unaire’는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안고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주어진 부정적 조건들이다. 넓게 보면 여성의 불균등한 지위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실제로 그 불균등함의 실제와 내포는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여성들의 권리 상승을 위한 다방면의 노력과 투쟁이 개재되어 있다. 때문에 과거의 글쓰기가 현재의 해결로 작동하려면, 그 변화를 ‘계통발생적으로’ 되짚는 과정이 과거 복기의 작업 안에 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자의적으로 무작정 연결되면 ‘히스테리’가 증가한다는 게 정신분석의 통찰이다. 글 앞에 이 소설이 ‘차분한 회상’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고 했다. 이 차분함은 방금 말한 ‘계통발생적 반추’를 포함하는가? 독자는 그 점에 유의해가며 작품을 읽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