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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되풀이로서의 역사에 대한 변론 — 김정환, 『순금의 기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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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되풀이로서의 역사에 대한 변론 — 김정환, 『순금의 기억』

비평쟁이 괴리 2024. 2. 26. 05:13

놀랍게도 김정환이 속내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순금의 기억』(창작과비평사, 1996)에서 그는 마침내 말한다. 역사는 결코 생의 축적이 아니라고. 역사는 단지 썩은 자궁에서 분만된 고름덩어리라고. 그저 지리멸렬일 뿐이라고.
민중은 헐벗은 만큼 물들지 않았다는 순수의 역설로 군사정권의 압제에 대항해 살아냄의 윤리학을 맞세웠던 초기시나 민주화의 열풍 속에서 민중의 힘찬 진군을 “끈질기고, 길고/거무튀튀”한 기차에 비유한 나중 시들에 익숙했던 독자들은 잠시 아연할 법하다.
그러나, 본래 그는 역사를 믿지 않았다. 초기시의 그가 살아냄의 윤리를 왜 “숨가쁜 진실”,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는 “만남”이라고 말했던가. 그에게 살아냄은 지속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순간의 영역에 속했다. 그의 시는 서사시의 쪼가리가 아니라, 극(劇)의 정점이다. “전쟁터에 박수갈채가 폭죽으로 터지고/극장 안에 비명 소리가 웅웅댄다.” 그것이 김정환이 보는 삶의 진면목이다. 그것에 그는 ‘희망’의 이름으로 시간의 탈을 덮어 씌었었다.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그 희망. 그러나, 그것을 이제 그는 버렸다.
왜 시간을 부인하는가? 희망의 나이를 가지기에는 너무 늙었기 때문이 아니다. 역사란, 버림받은 신의 시대(중세)와 새로운 신의 시대 사이에 인간이 설치한 가교에 지나지 않음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신이 되고 싶어 한 인간이 연출하는 환상극임을 그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래서 그는 여전히 역사를 말한다. 지리멸렬의 역사. 악취나는 역사, “녹아내리고 흐르고 마모되고 건조되는” 역사. 이 더럽고 데데한 시간을 그는 토악질하면서 끈질기게 말한다. 왜? 환상은 세상과 세상 사이에 장미빛 희망의 가교를 설치한 진보주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세상 사이는 결국 허망한 아귀다툼밖에 없다고 설파하는 허무주의에도 있기 때문이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우리는 숨을 쉬고 있지 않은가? 이 “틈 사이, 필사적인 역사가 놓여 있”지 않은가? 
“삶은 전쟁터다.” 그러나 그것은 “관념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계속 살아야 한다.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역사는 이제 진보로서의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것은 력사(轢死)와 역사(易事) 사이에 놓인 기억이다. 온통 사라질 뿐이어서 “허망하고 허망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름다움의 주소”를 결코 못잊는 기억. 모든 것이 무너졌어도 “살아있음의 아가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각인해놓은 기억. 그의 역사는 시간의 지속이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진실의 되풀이이다. 그 역사주의자가 말한다. “누구나, 자기가 사는 시대를 낭떠러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오히려, 세상을 변혁하려 한다면 더욱, 스스로 벼랑이 되어야 한다.”(199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