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 (219)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집 나는 왜 고집스럽게 집으로 가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집을 가지려 등이 휘고 그 능선에서 해가 뜨고 진다 집안의 장롱이나 책상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두어 놓고 있을 것이다 나는 거리를 헤매면서 알았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저 빛나는 언어를 얻을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의미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행복이라는 상징은 얼마나 춥고 배가 고픈가 나는 오늘도 많은 의미를 소비했다 가엾은 예수와 노자에게 다시는 언어를 구걸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집이 없었다고 한다 눈사람의 집은 그의 몸이다 그의 몸은 그의 전집이다 나도 눈사람처럼 집 없이 살고 싶다 (최종천 시집, 『눈물은 푸르다』, 시와시학사, 2002) 최종천의 시를 읽다가 나는 깜짝 놀란다. 그가 노동자이기 ..
어떤 개인 날 낡고 외진 첨탑 끝에 빨래가 위험하게 널려 있다. 그곳에도 누가 살고 있는지 깨끗한 햇빛 두어 벌이 집게에 걸려 퍼덕인다. 슬픔이 한껏 숨어 있는지 하얀 옥양목 같은 하늘을 더욱 팽팽하게 늘인다. 주교단 회의가 없는 날이면 텅 빈 돌계단 위에 야윈 고무나무들이 무릎 꿇고 황공한 듯 두 손을 모은다. 바람이 간혹 불어오고 내 등뒤로 비수처럼 들이댄 무섭도록 짙푸른 하늘. (in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창작과비평사, 1998) 시를 읽다가 눈앞이 하얗게 비워질 때가 있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과 문득 마주쳤을 때다. 「어떤 개인 날」은 감히 마주볼 수 없는 신의 표정을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 표정은 위태롭고 슬프고 맑다. 위태로운 것은 인간들이 참된 삶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알긴 뭘 알아 알긴 뭘 알아 안다는 거지 혼자서는 모르니까 혼자서는 안되니까 끼리끼리 모여 안다고 우기는 거지 없는 것도 있고, 보지 않은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보았다고 우기면 본 거지 예수는 하느님이라고 (혹은 사람이라고) 예수는 독생성자라고 (혹은 장자라고) 예수는 부활했다고 (혹은 소생했다고) 예수는 재림한다고 (혹은 환생한다고) 끼리끼리 모여 그렇다면 그런 거지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고 몰라되 되는 건 몰라도 되는 것인데 그건 죄가 아니니까 그저 괄호 속에 넣어두면 되는 것인데 저승에 가서나 알 일들까지 (정말 저승이 있는지는 또 누가 알아) 끝끝내 살아서 알려고만 그러니 어쩌랴, 법에 걸리는 일이 아닌걸 어쩌려, 돈이 생기는 일인걸 그게 진짜 사는 맛인걸 (김형영 시집, 『새벽달처럼』, 문학과..
交感 몇 해 전 요즈음 나는 잘 먹힌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러면서도 행복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저 빼앗기고 있다는 기분이었는데 오늘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한 엄마를 보면서 고함치도록 행복하였다 그는 정말 잘 먹히고 있었다 아이가 배가 고플 때쯤이면 젖이 찌르르 신호를 보낸다고 했다 이건 분명 먹이다가 아니라 먹히다이다 먹히다는 고함치도록 행복하다이다 그러니 모유가 제일이다! 그대 오늘 사랑이 고픈가 이 몸이 지금 찌르르르 신호를 보낸다 (정진규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 세계사, 2000) 인생은 고달프다. 그래도 잘 나간다고 시인은 ‘뻥친다.’ 그걸 “잘 먹힌다고” 표현하고 다녔다. 뻥칠 때의 의미는 ‘세상일이 내게 잘 들어맞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속뜻은 내가 ‘되는 일 하나 없이 남..
雨水 雨水라는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면서 무심히 창을 여는데 길 건너편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달려들 듯 노을이 흘러가고 가는 바람이 흘러 가고 볼이 붉은 아이가 간다 누가 스위치를 눌렀는지 어두운 창이 밝아지면서 추녀가 높이 솟아오르고 불분명한 시간들이 산허리를 타고 강둑 버드나무숲 쪽으로 휘어져간다 (최하림,『풍경 뒤의 풍경』, 문학과지성사, 2001) 밖에 따사로운 봄비가 내리는 줄 알았나 보다. 계절의 이름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심히 창을 여니, 비가 아니라 노을이 흘러가고 바람이 부는 소리였다. 그런데 노을과 바람은 봄비처럼 촉촉이 대지에 스며들지 않는다. 노을은 “달려들 듯 흘러가”며 지붕 아래의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러나 “대동강물이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고 사람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