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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김형영의 「알긴 뭘 알아」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2:51

알긴 뭘 알아

 

알긴 뭘 알아

안다는 거지

혼자서는 모르니까

혼자서는 안되니까

끼리끼리 모여 안다고 우기는 거지

없는 것도 있고, 보지 않은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보았다고 우기면 본 거지

 

예수는 하느님이라고

(혹은 사람이라고)

 

예수는 독생성자라고

(혹은 장자라고)

 

예수는 부활했다고

(혹은 소생했다고)

 

예수는 재림한다고

(혹은 환생한다고)

 

끼리끼리 모여 그렇다면

그런 거지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고

몰라되 되는 건 몰라도 되는 것인데

그건 죄가 아니니까

그저 괄호 속에 넣어두면 되는 것인데

저승에 가서나 알 일들까지

(정말 저승이 있는지는 또 누가 알아)

끝끝내 살아서 알려고만 그러니

어쩌랴, 법에 걸리는 일이 아닌걸

어쩌려, 돈이 생기는 일인걸

 

그게 진짜 사는 맛인걸

(김형영 시집, 새벽달처럼, 문학과지성사, 1997)

 

시인의 첫 시집 모기는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1979)에서 , 우리의 왕국인 무덤아라는 외침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버림받은 인생들을 모두 짐승으로 은유하고 그 짐승들의 서식처를 무덤으로 지칭했을 때, 거기에는 소외된 인생들이 은밀히 파내려간 그들만의 생과 그런 은밀한 생은 까마득히 모른 채 그저 행복의 착각에 빠져 있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야유가 한데로 어울려 기이한 군무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오랜 병을 앓고 난 후 시인의 시세계는 많이 변했다. 되찾은 생의 감격과 절대자에 대한 겸허한 순종이 언어의 훈륜을 그리게 되었다. 하지만 핵심을 찍어내는시인의 직관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이 시는 보여준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삶이 우리의 참된 노동과 실천을 기다리는 넓게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쓸 데 없는 지식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거기에 자신들마저 집어넣어서 지식을 고정관념으로 만들고 자신들을 지식 패거리로 만든다. 그런 사람들이 알긴 뭘 알겠는가? 허위를 남용하는 자유 빼고는. 돈의 달콤함 빼고는. 무리에 기생해 남을 지배하는 쾌감 빼고는.(쓴날: 2002.03.19, 발표:주간조선1698, 200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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