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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노향림의 「어떤 개인 날」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2:52

어떤 개인 날

 

낡고 외진 첨탑 끝에 빨래가

위험하게 널려 있다.

그곳에도 누가 살고 있는지

깨끗한 햇빛 두어 벌이

집게에 걸려 퍼덕인다.

슬픔이 한껏 숨어 있는지

하얀 옥양목 같은 하늘을

더욱 팽팽하게 늘인다.

주교단 회의가 없는 날이면

텅 빈 돌계단 위에 야윈 고무나무들이

무릎 꿇고 황공한 듯 두 손을 모은다.

바람이 간혹 불어오고

내 등뒤로 비수처럼 들이댄

무섭도록 짙푸른 하늘.

(in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창작과비평사, 1998)

 

시를 읽다가 눈앞이 하얗게 비워질 때가 있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과 문득 마주쳤을 때다. 어떤 개인 날은 감히 마주볼 수 없는 신의 표정을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 표정은 위태롭고 슬프고 맑다. 위태로운 것은 인간들이 참된 삶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신은 인간에게 쫒겨, 낡고 외진 첨탑에 유폐되었다. 그때부터 신은 인간처럼, 아니, 그보다 더 낮은 존재가 되어 빨래를 한다. 인간이 주인되고 신이 노예가 되었다. 신의 표정이 슬픈 것은 그러나 몰락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신이 한결같은 위엄을 잃지 않고 인간을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슬퍼함으로 하얀 옥양목 같은순수의 하늘을 팽팽하게 늘인다.” 마지막 대목에서 가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인간이 한 짓이 부끄럽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은 인간의 모든 곳에 임한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신의 한없이 맑은 슬픔이 나의 등을 비수처럼 찌른다. 참된 삶에 대한 각성은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마주쳐야만 하는 명령이다.

덧붙이는 말: 시인에게 문의했더니, 이 시의 배경은 절두산 성지라고 한다. 고무나무는 물론 어느 가냘픈 나무들에 시인의 상상력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아주 야윈 고무나무들은 야위었으나 불변의 나무들이다. 가장 사악한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참된 삶을 향해 경배하고 있다. 가장 약한 사람들이. 스스로 야윌 줄 아는 사람들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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