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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제 53회 동인문학상 마지막 독회에서 선정된 후보작에 대한 인터넷용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이주혜의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창비, 2022.07)에서는 에피소드들이 극적 사건을 이루면서 그 각각의 묘사가 박진한 게 돋보인다. 그의 묘사는 유사성의 선을 따라가지 않고 대조의 선을 따라간다. 그것이 그의 묘사의 색깔을 선명하게 하는 원인이다. 사물들의 대비, 성격 차이, 의도와 오해,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즉 대상, 성질, 행동, 동경... 달리 말하면, 명사, 형용사, 동사의 각 시제들 모든 곳에서 대조가 발생한다. 이런 대조 묘사들은 더욱 발전해, 에피소드들 간의 대조로 확대되면서, 작품 전체를 적흑(赤黑)..
※ 아래 글은 제 53회 동인문학상 독회 제9회(마지막 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에 대한 인터넷용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가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박연준의 『여름과 루비』(은행나무, 2022.07) 는 흔한 사건 위에 새콤달콤한 느낌들을, 샐러드에 드레싱을 하듯이, 뿌려서 이야기의 재미를 더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깨를 치는’ 행위의 심리적 근원은 “깨쏟아진다”, “꿀떨어진다” 등의 비유가 가리키는 행복한 상태를 직접 만끽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조각난 양태로나마 느끼기 위해서 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전달하는 데에 있다. 우리의 주인공은 생활능력이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가까운 친척에 의해 거두어져 자라면서 비슷한 또래의 인물들과 대화와 경험을 공..
※ 아래 글은 제 53회 동인문학상(2022) 독회 제 8회를 통해 인터넷 용으로 발표된 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가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김나현의 『휴먼의 근사치』(다산북스, 2022.06)는 청소년성 판타지와 과학소설을 뒤섞으면서,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물음을 밀고 나간다. 학대 받는 아이, 통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 개인적 취향들에 영적 권능을 부여하는 것, 더 나아가 현재의 사건에 관계하는 공간을 세계 전체와 동일시하는 관점 등은 청소년 판타지에서 온 것이고, 인류의 멸망과 합리성에 근거한 인간관리, A.I의 등장은 과학소설의 외형을 이룬다. 거기에 홍수의 심판이라는 성경적 주제 등이 덧붙어 있다. 과학소설의 외형을 가졌다고 했는데, 과학적 근거에 ..
※ 아래 글은 제 53회 동인문학상 제 8차 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에 대한 지면 심사평의 원본이다. 원본이라 함은 발표본에서 생략된 부분들을 포함했다는 뜻이다. 지면 발표본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발표 시 제목은 '만사가 지긋지긋. 이제 한국인은 기다리지 않는다'이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한국인의 오래된 심성 중의 하나는 ‘기다림’일 것이니, 그것을 표현한 문학작품은 산적해 있다. 향가의 「제망매가」에서부터 고려의「정읍사」를 거쳐,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이르기까지. 가요로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신앙으로서는 ‘미룩불 신앙’과 ‘정감록’ 신화에서 그런 마음은 뜨겁게 드러났고, 한국인들은 그런 문화물들에 몰표를 주어 환호하였다. 또한 우리는 만해와..
※ 아래 글은, 제 53회 동인문학상 제 7차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에 대한 독회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볼 수가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조진주의 『살아남은 아이』(현대문학사, 2022.05)에서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치밀하다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에서, 헐거운 데가 없도록 사건들의 “관절”(이건 김태용의 소설에서 빌려 온 표현이다)들에 이음부를 단단히 죄어, 그 흐름을 빈틈없이 맞추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장편소설이 종종 노출해 온 플롯의 부실함을 멋지게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잘 짜여진 소설은 아주 반가운 현상이다. 기본적인 주제는 타자를 향한 무관심과 이용 욕망으로 미만한 ‘어른들의 사회’를 고발하는 아이들의 탈출 혹은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