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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 - 조진주의 『살아남은 아이』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 - 조진주의 『살아남은 아이』

비평쟁이 괴리 2022. 7. 20. 09:29

아래 글은, 53회 동인문학상 제 7차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에 대한 독회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볼 수가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조진주의 살아남은 아이(현대문학사, 2022.05)에서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치밀하다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에서, 헐거운 데가 없도록 사건들의 관절”(이건 김태용의 소설에서 빌려 온 표현이다)들에 이음부를 단단히 죄어, 그 흐름을 빈틈없이 맞추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장편소설이 종종 노출해 온 플롯의 부실함을 멋지게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잘 짜여진 소설은 아주 반가운 현상이다.

기본적인 주제는 타자를 향한 무관심과 이용 욕망으로 미만한 어른들의 사회를 고발하는 아이들의 탈출 혹은 해결의 모험이다. 이 무관심과 착취의 전반적인 상황이 가족적 규모로 압축되어 사건들의 성격을 도드라지게 하고 인물들의 반응을 체험적으로 만들면서 박진감을 주고 있다.

이 사회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책임을 통한 보호잘 키우고 싶다자양(滋養)’의 외관 아래, 훈육을 위한 폭력에 시달리고 어른들의 물질적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당한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탈출하고자 하지만 직접적인 폭로는 불가능하며, 매번 우연이 끼어들어 사건들을 꼬이게 한다. 그런데 이 우연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경고했던 것처럼 플롯을 망치는, 뜬금없이 나타나는 우연들이 아니라, 우연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서 심리적 필연성을 띠고 사건들에 적절하게 개입하여, 사건들의 주름을 썩 찰지게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어른들의 일상적 폭력은 우선 하나의 거대한 재앙으로 닥치고 아이들은 이 재앙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수를 쓰게 되며, 그들의 그러한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얻게 되어, 동굴 바깥으로 나가는 데 성공하게 된다.

한데, 방금 사건에 개입하는 우연들이 우연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되어 심리적 필연성을 얻는다고 했는데, 이 욕망 자체가 우연인 경우들이 꽤 산재한다. 우선 약간의 돈을 챙기기 위해 딸을 유괴한다는 설정 자체가, 동기와 행위 사이에 큰 간격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사건의 전개는 이런 설정에 의해서 설치된 미궁 탈출의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 가정된 악마적 상황(혹은 나쁜 마법의 세계)에서 세 주인공만이 어린이 프로의 착한 어린이들처럼 서로를 신뢰하는 선한 존재로 권화되어서, 주변의 현실적 권능들(가령 경찰)은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하고,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을 게임으로 받아들여 문제를 해결하는 양태로 나타나니, 이는 애초에 이 소설이 게임의 형식으로 고안되었음을 가리킨다.

때문에 결말에서 주인물이 제기하는 질문, ‘계속 아이로 남을 것인가?’,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할 것인가’,는 여전히 이 소설이 현실 세계의 초입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거꾸로 증명한다. 그 고생 끝에 어른보다 더한 기지를 발휘해서 탈출해 성공했는데, 여전히 아이일 수 있다니?

그렇다면 이 소설은 정말 현실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독자는 작품 속의 미로 만큼이나 복잡한 단계의 생각의 층위를 이동시켜 가면서, 이에 대한 대답을 얻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작품이 제기하는 문제가 그래도 유효하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