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소설읽기 (103)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2023년 동인문학상 제 2회 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된 소설에 대한 심사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안윤의 『남겨진 이름들』(문학동네, 2022.11)은 전체 226쪽의 소설인데, 여기에 ‘어깨’라는 어사가 22번 나온다. ‘허리’는 15번 나온다. 물론 묘사되는 신체 부위는 ‘손’이 압도적이다. ‘손’은 70번이나 나온다. ‘발’도 비슷한 빈도로 출현한다. 그러나 ‘손’ ‘발’, 그리고 ‘이목구비’의 항목들은 누구나 흔히 사용하는 어사다. 그것은 직접적으로도 쓰이고 비유적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어깨는 흔히 묘사되지도 않고 비유적으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수족과 이목구비를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를 조사하면 ‘어깨’의 특별성을 알 수..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문학동네, 2022.08)는 여성동성애자들을 주 인물들로 등장시키고 있으나, 제재가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형상으로서보다는 좀 더 범위를 넓혀 ‘비사회인’의 범주 안에 인물들을 넣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견은 김멜라의 인물들이 필자가 최근의 한 글(「정선형, 이건 애도가 아니라 곡성이구려」, 『문학과사회』 2022년 겨울)에서 정의했던 ‘욕구형 인간’에 가깝다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욕구형 인간’은 ‘욕망형 인간’과 대비되는 인간형으로서, 욕망형 인간들이 사회의 일반 구성원에 해당한다면 욕구형 인간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욕구형 인간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본능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 경향은 희래가 날 싫어하면 어쩌지, 걱정되면서도 왠지 희..
※ 아래 글은 제54회 (2023년) 동인문학상 첫 번째 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된 글에 대한 지면용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신종원의 『습지장례법』(문학과지성사, 2022.08)은 유령의 집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책을 펼치면 엽기 장례를 치르는 광경이 격하게 묘사된다. 뭐가 엽기란 말인가? 잘 알다시피 문학에 비유법이란 게 있다. 장미로 미인을 비유하고, 주가 급등을 쇠뿔로 비유한다. 여기에서는 분묘를 늪지에 비유했다. 비유는 장식이 아니다. 원본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늪지에 비유했더니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 가문의 모든 조상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늪에 빠져 죽은 시체로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다. 온전히 삭지 못한 채로 너덜너덜..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첫 번째 독회의 결과에 대한 독후감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에 양해를 구해, 블로그에도 싣는다.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은』(민음사, 2022.09)은 이제 소수자의 삶을 공정하게 대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1980년대 후반부터 큰 의제의 성격을 가지고 폭발한 성평등에 대한 의론들은 요 근래 몇 년 사이에 성소수자에 대한 담론으로 급격히 발전하였다. 짐작컨대 성소수자로서의 자각과 자인의 수보다도 그 수량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는 것은 성소수자 쟁론에 상당히 많은 외부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거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있었다. 긍정적인 면은, 성소수..
※ 어제, 즉 2022년 12월 17일, 아주대학교 박만규 교수가 단장으로 이끌고 있는 초학제 연구 모임인 '감정연구단'의 제2회 정례 세미나가 '고등과학원' 제 8동에서 오후 12-18시 사이에 열렸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오래 전에 출판했던 글에서 뽑아 '시기'와 '질투'의 차이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반응이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도 발표 내용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의 심성을 연구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내가 이 글에서 직접 겨냥한 것은 ‘조국건설’의 사명에 직면한 해방 후 한국 지식인들의 정신적 상황이었으며, 보다 넓게는 조선조 이래의 한국 지식인의 심리적 콤플렉스였다. 현대 한국의 이해에 암시를 줄 수 있다는 의견에 기대어, 썩 길긴 하지만, 블로그에 올려도 괜찮겠다고 판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