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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이 글 역시 앞의 글과 마찬가지로 김혜순 시인의 『날개환상통』(문학과지성사, 2019)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The National Book Critics Circle·NBCC) '시부문'에서 수상한 걸 계기로 올린다. 이 글 또한 필자의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 - 내가 사랑한 시인들 세 번째』(문학과지성사, 2020)에 수록되었다. ‘나무’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서 가장 뿌리 깊은 이미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한 사전에 의하면 나무는 “가장 풍요하고 가장 널리 퍼진 상징재 중의 하나[1]”이다. 사전의 집필자는 이어서, 엘리아데Mircea Eliade가 ‘성스러운 것’과 만나려는 인류의 심성은 그것이 지상에 자리잡을 수 있는 중심의 자리..
※ 김혜순 시인의 『날개환상통』(문학과지성사, 2019)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The National Book Critics Circle·NBCC) '시부문'에서 수상했다. 크게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다. 순수한 시적 성과로 세계시인의 반열에 그는 올랐다. 그의 경사가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궤도 안에 진입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아래 글은 김혜순의 시가 가진 변별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올려 본다. 이 글은 필자의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 - 내가 사랑한 시인들 세 번째』(문학과지성사, 2020)에 수록된 글이다. 김혜순의 시는, 인종․장애와 더불어 오늘날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 하나를 구성하고 있는 여성성의 첨예한 측면들을 농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흔하고 쉬운 방..
시집, 『본동에 내리는 비』(문학과지성사, 1988) 뒷 표지에 의하면, 윤중호는 서울 사는 촌놈이다. 서울에선 "에그 촌놈" 소리를 들으며, 고향에 가면, 친구들이 말은 안하지만, 그의 몸 구석 어딘가에 빤지름한 도시의 물때가 묻어 있는 것 같아서 어색하다. 그는 이 `재수 없는 삶'이나, 그의 시들이나 꼭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도시 때가 묻어 있다고 어색해 하는 그만큼 그는 촌놈이며, `촌놈'소리를 들으며 버티는 그만큼 서울과 싸우는 서울놈이다. 그 싸움은 서울로 상징되는 지배적 생활 양식이 낳은 갖가지 부정적인 삶의 모습들, 물질 만능, 속도 경쟁, 투기, 조직적 폭력, 자기 보존 본능,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과 그로 인해 촌으로 상징되는 사람들이 당해야 하는 가난과 소외와 죽음, 그리고 설..
백무산의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2012)는 노동시의 존재이유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노동자 시인이었다. 지금도 그러한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어휘들은 여전히 그 호칭을 추억하고 있다. “변두리 불구를 추슬러온 퇴출된 노동들”(「예배를 드리러」) 같은 시구가 그것을 또렷이 보여주지만, 그보다는 그가 ‘노동’을 “더 작게 쪼갤 수 없는 목숨의 원소들”이라고 지칭하는 데서 그의 추억의 끈덕짐이 더 진하게 드러난다.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없어서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 수밖에 없는 존재”가 ‘프롤레타리아’라는 마르크스의 정의가 매우 강렬한 실존적 의상을 입은 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동자적 정념 혹은 사유의 지속을 시인은 어쩔 수 없이 추억의 범주 안에 넣을 수밖..
백무산이 오랫만에 시를 발표하였다(『창작과비평』, 1996 가을). 그의 시를 마지막으로 본 게 93년 가을(『실천문학』)이었다. 거기서 나는 빙하처럼 가득하고 날카로운 슬픔과 마주쳤었다. 고단하고 병치레를 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했다. 그 여인이 어려움에 처한 시인을 돌봐주었었다. 헌데 “안부전화를 했더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시인은 “한 마디 미안하다는 한 마디는/꼭 해야 할 것만 같았다”(「「슬픔보다 깊은 곳에」」). 그 말은 들어줄 청자를 찾지 못한 채로 울음 가득히 허공을 떠돌았다. 그러나 유령처럼 떠돌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초혼가처럼 퍼지고 퍼져 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시인의 가슴이 무너질 때 독자의 가슴도 에이었다. 그의 슬픔이 피를 흘릴 때 독자는 슬픔이란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