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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소설의 새 계단 - 김초엽의 『파견자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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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소설의 새 계단 - 김초엽의 『파견자들』

비평쟁이 괴리 2024. 3. 27. 08:13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세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작품의 주제와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심사위원들의 평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필자가 생각하는 핵심 사항만 적기로 한다.

김초엽의 『파견자들』(퍼블리온, 2023.11) 과학소설(Science Fiction) 본령에 육박한 소설이라고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오래 전에 씌어진 이영의 『신화의 끝』(좋은 , 1999)에서 예감했던 한국 과학소설의 전도가 오래 횡보(橫步) 하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발사대에 서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여기에서 본령이란 말이 과학소설 고정불변의 정의를 부여할 있다는 주장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과학소설이 일반적인 소설 그리고 다른 장르소설과 다른 정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용어가 적의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한국 과학소설의 상당수가 여전히 판타지와의 혼합물로 작성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이는 특별히 주의를 요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판타지와 과학소설을 구별하는 가장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학이라는 말에 있다. 판타지나 과학소설은 모두 있지 않은 현실 추구한다. 하지만 내용은 다르다. 판타지의 있지 않은 현실 실제 현실과 무관한 -현실이며 실제 현실의 가혹함을 보상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태어난 장르이다. 반면 과학소설의 현실은 과학에 근거한 현실이다. 과학에 근거한다는 말의 뜻을 모를 사람은 없겠지만, 기초적인 확인을 위해 다음 글을 인용해 본다.

 

“‘과학science이라는 단어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갖게 것은, 신뢰할만한 지식이란 감각의 확실성에 뿌리를 두고 그것이 꼼꼼한 연역적 추론과 실험적 검증을 통해 일반적 지식의 수준에 오른 것을 가리킨다는 깨달음에 다달은 때였다. 17세기에 일군의 작가들은 기존의 장르와 서사 골격들 안에 과학적 방법이 관여한 새로운 기술과 발견에 관한 허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브라이언 스터블포드, 「장르 이전의 과학 소설」[1])

 

과학소설의 기원을 말하고 있는 인용문은 과학소설이 과학적 검증을 통과한다는 기본적 조건으로 두고 있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과학소설에서 다루는 있지 않은 현실 비현실이 아니라, 언젠가 있었거나 도래할 있다는 믿음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제공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쥐라기 공원」같은 황당한(?) 소설을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hrichton 칭송을 받는 이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을 다룬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장 명석하고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함으로써 설득력plausibility 확보했다는 평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 스스로 인정했듯, 시간 동안 고생물학 실험실을 들락거린 데에 힘입고 있다.(스티븐 제이 굴드, 「쥐라기 공원[2])

여기에서 하나의 조건이 태어난다. 과학의 눈에 입각해서, 여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탐사한다는 것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갱신하고자 하는 의욕을 정확한 운산(運算) 속에 놓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정확한 측정 위해서는 측정자 자신의 태도와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학소설의 가장 중요한paramount 어휘로 거론되는 경이감Sense of Wonder에서 정말 주목할 대목은, 경이의 중심이 경이로운 대상에 있는 아니라 대상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주체 자신에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소설은 과학적 탐구를 미지의 발견을 위한 도정으로 바꾸면서, 인류를 모험 속에 밀어 넣는다. 이때 인류는 스스로 갱신의 과정 속에 놓이고 그건 바로 인류 자신을 인류 너머의 존재로 도약하게 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과학소설의 체험은 무엇보다도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즐거움을 [스스로] 요청[3]하는 체험이다. 때문에 과학소설의 정념을 종종  숭고성The Sublime 연결시키곤 하는데, 그러나 주체 자신의 운동성 때문에 숭고성은 수직적이지 않고 외향적이다. 어떤 경외로운 것과의 만남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자신을 개방하여 나아가는 것이 사이파이적 인물들의 기본 자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소설에 관한 글들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 경구 열린 마음과 경이감open heart and a sense of wonder”이라는 명제의 결합이 과학소설의 정념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명제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한다면, sense of wonder 경이감보다는 궁금의 감각이라고 번역하는 나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런 마음을 행동의 극적 장면으로 표현한 , 로덴베리Gene Roddenberry 창안한 스타트랙Star Trek 시리즈의 ‘오프 타이틀 빈번히 돌출하는 우주, 최후의 개척지. []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에 용감하게 나아가세 Space, The Final Frontier. [] Boldly Go Where No One Has Gone Before라는 어구이다. 과학소설이 종종 성배탐색 비유되는 것도 이런 두려움을 무릅쓰고 진실에 투신하는 자세에 근거한다.

김초엽의 『파견자들』은 지금까지 서술한 바와 같은 과학소설의 본성에 대한 의식을 작품 내내 끈질기게 의식하면서, 그에 합당한 주제와 규모를 갖춤으로써, 한국 과학소설의 새로운 도약의 기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워프 드라이브 장착하길 기대해 본다.



[1] Brian Starbleford, Science fiction before the genre, in Edward James, Farah Mendlesohn (eds), The Cambridge Companion to Science Fi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p.15.

[2] in Charles L. P. Silet (Ed), The Films of Steven Spielberg , Maryland and Oxford: Scarecrow Press, 2002, epub version

[3] Jan Johnson-Smith, American Science Fiction TV : "Star Trek", "Stargate" and Beyond, New York: I B Tauris Academic, 2005,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