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25)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줄탁 저녁 몸 속에 새파란 별이 뜬다 회음부에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결정본 김지하 시전집 2』(1986~1992), 도서출판 솔, 1993) 해가 저물고 있다. 유한자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세모(歲暮)는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순환하는 자연의 눈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죽음은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진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사람과 자연의 두 눈을 포개어 죽음의 비애와 신생의 희열이라는 두 개의 근본적 감정을 증폭시켜왔다. 비애가 클수록 희열은 더욱 차오른다. 김지하의 「줄탁」도 그러한 재생 신화의 한 자락을 펼쳐 보인다. 그러..
꽃잎 2 꽃병의 물을 갈아주다가 신종인지 송이가 아주 작은 장미 꽃잎이 몇 개 바닥에 떨어졌다 저 선홍색 꽃잎들! 시멘트 바닥이 홀연히 떠오른다, 무가내하 떠오르고 떠오른다. 또한 방은 금방 궁궐이 되느니, 꽃잎 하나 제왕 하나 꽃잎 둘 제왕 둘, 길은 뜨고, 건물도 뜨고 한 제왕이 떠오른다. ( 『정현종 시 전집』 제 2권, 문학과지성사, 1999) 정현종의 시가 갈수록 신명으로 흥청거린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신명은 생명에 대한 경탄이 몸으로 옮겨 붙어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으로 추는 춤과도 같은 것이다. 저 무가내하(막무가내)로 추는 말의 춤, 그게 경이롭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산업 문명사회가 발전하면서 세상은 얼마나 딱딱해졌으며 인간들은 얼마나 각박해졌던가. 그걸 시인이 모를 리 없다...
새 머리채를 잡고 자반뒤집기를 하던 시누이도 울고 땅문서 갖고 줄행랑을 놓던 서숙질도 운다 들뜨게도 하고 눈물깨나 짜게 만들던 그 사내도 울고 부정한 어머니가 미워 외면하고 살던 자식도 운다 고생고생한 언니 가엾어 동생도 울고 그 딸도 운다 새도 제 울음 타고 비로소 하늘을 높이 날고 곡소리 타고 맹인 저 세상 수월히 간다지만 얼마나 지겨우랴 내 이모 또 이 울음 타고 저승길 가자니 진 데 마른 데 같이 내디디며 평생을 살아왔으니 저승길 또한 그런가보다 입술 새려 물겠지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작과비평사, 1998) 「새」에는 3중의 소리가 포개져 있다. 하나는 망인과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다. 싸웠던 사람도, 돈 떼먹은 사람도, 안달나게 했던 사람도 운다. 미워했던 사람..
재입원 이틀째 성긴 눈발 속에 바다로 가던 길이 모퉁이를 돌며 주춤주춤 멈춘다 마지막으로 한번 되돌아보듯, 하긴 살다가 나도 모르게 도달한 곳, 돌 성글게 박아 몸 뒤틀며 내려가는 좁은 길, 잎 진 나무 하나 앙상한 팔을 들어 눈을 맞고 있다. 팔꿈치에는 찢어진 그물과 팔등에는 새파랗게 얼어 있는 겨우살이 그 옆에는 마른 우물 들여다보면 가랑잎 얼굴들이 모여 있다. 가장자리가 온통 톱날인 얼굴들. 잎 진 나무 하나 마른 우물 모퉁이를 돌며 주춤주춤 멈춘 길. 돌기 전엔 성긴 눈 돌고 나면 밴 눈 하늘과 앞길이 대번 하얗게 질려…… (『버클리 풍의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0) 황동규는 주춤거리고 있다. 길은 늘 인생의 은유이다. 시인은 아팠고 그 아픔이 새삼 종착지에 이르고야 마는 길로서의 인생..
허유(虛有) 선생의 토르소 안다르샤 잡풀들이 키대로 자라고 그들 곁에 머루다람쥐가 와서 엎드리고 드러눕고 한다. 그 머루다람쥐의 눈이 거짓말 같다고 믿기지 않는다고 장군 후랑코가 불을 놨지만, 너 천사는 그슬리지 않는다. 안다르샤, 머나먼 서쪽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그러나 죽도화는 피지 않는다. 피지 않는다. (『거울 속의 천사』, 민음사, 2001) 시인이 직접 주를 달아 허유 선생은 ‘아나키스트 하기락(河岐洛) 선생의 아호’라 하였다. 하기락 선생은 50년대에 대구 매일신보에서 실존철학을 강의하셨다 하니 해방 직후의 지식인으로 보인다. 안다르샤는 ‘스페인령, 1930년대 아나키즘의 본거지’라고 또한 주가 달려 있다. 안달루시아(Andalusia)를 가리키는 듯한데 확실치는 않다. 주(註)로 보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