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신경림의 「새」 본문

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신경림의 「새」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2:40

 

 

머리채를 잡고 자반뒤집기를 하던 시누이도 울고

땅문서 갖고 줄행랑을 놓던 서숙질도 운다

들뜨게도 하고 눈물깨나 짜게 만들던 그 사내도 울고

부정한 어머니가 미워 외면하고 살던 자식도 운다

고생고생한 언니 가엾어 동생도 울고 그 딸도 운다

새도 제 울음 타고 비로소 하늘을 높이 날고

곡소리 타고 맹인 저 세상 수월히 간다지만

얼마나 지겨우랴 내 이모 또 이 울음 타고 저승길 가자니

진 데 마른 데 같이 내디디며 평생을 살아왔으니

저승길 또한 그런가보다 입술 새려 물겠지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작과비평사, 1998)

 

에는 3중의 소리가 포개져 있다. 하나는 망인과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다. 싸웠던 사람도, 돈 떼먹은 사람도, 안달나게 했던 사람도 운다. 미워했던 사람도, 동정했던 사람도 운다. 그 울음은 그러니까 인연의 다채로움을 실감케 한다. 그러면서 죽은 사람이 살았을 때 겪은 온갖 고생을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무차별적으로 감염시킨다. 우는 사람은 죽은 이가 불쌍해서도 울고 자신의 인생이 서러워서도 운다. 다른 하나의 소리는 슬픔을 위무하는 속설의 그것이다. 고난은 언제나 축복을 위해 있다고 속담들은 말한다. 그것은 죽은 이를 위로하며 산 자들을 안심케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소망일뿐이다. 소망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의지와 싸움을 통해 획득된다. 저승길이라고 다르겠는가. 저승길이든 인생길이든 입술 새려 물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의지가 제 3의 소리이다. 이 소리는 화자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진 데 마른 데 같이 내디디며함께 살아 온 사람들의 집단적 목소리이다. 그 집단적 목소리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인연의 다채로움이다. 그것은 삶의 아주 다양한 몸짓들이 모두 고난을 뚫고 삶을 헤쳐 나가는 의지의 몸짓임을 깨닫게 한다. ‘입술 새려 무는표정은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과 똑 닮았다.

 

(시인에게 여쭈었더니, 7행의 맹인망인(亡人)’의 속된 발음이라 한다. 소경의 뜻으로 읽지 마시길.)

[2001.11.16, 발표: 주간조선1680, 200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