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22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22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2. 10:03

응모작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시로서 평가받으려면 일반의지의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도약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시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솔직한 감정이라고 생각한 게 꼭 솔직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현의 장르인 소설과 달리 시가 자기 심사의 표현이라는 널리 알려져 있는 정의에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항목이 숨어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둘째 대상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대상과의 심리적 상호작용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똑같은 묘사이지만 소설의 묘사는 개진적이며, 시의 묘사는 통찰적이다. 즉 대상의 면모를 하나의 순간에 집약시킬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시는 주제와 비유와 리듬의 총화이다. 주제가 깊이 있어야 하고, 비유가 정교해야 하며, 리듬이 공동체의 호흡에 근거하되 혁신적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점을 늘 되새기면 시작에 한층 발전이 있으리라 믿는다.

버드피딩, 스물 두 번째 도로시, 구슬놀이, 라하이나 눈, 아나키스트. 낙홍이 마지막으로 고려한 작품들이다. 두루 저마다의 개성을 한껏 발휘한 작품들로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낙홍은 타고난 리듬이 돋보인다. 주제가 단순하고 감상적인 점이 흠이다. 라하이나 눈은 단어들의 대조를 통해 인식의 즐거움을 부추기면서 사람들의 일반적 정념과 그에 따른 기상 행동들을 풍자하고 있다. 이 풍자는 인류의 보편 심성을 겨냥하는 만큼 썩 장엄하다. 그렇다는 것은 못난 사람들을 감싸안을 필요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버드피딩은 미래를 향한 인간의 자세와 동작이 충분치 못함을 압축적인 관념들을 통해 적발하고 좀 더 분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설득력은 있으나 규모가 크고 관념적이다. 시인의 체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슬놀이는 명징한 이미지들의 대조와 그를 통한 리듬감이 돋보이다. 세상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를 외면하는 세상 사이의 밀당을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시적 재능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다만 재능에 도취하다 보면, 유희의 수준에 머물 수 있다. 삶의 문제들에 어떻게 절실성을 담을 수 있는지를 고려하기 바란다. 아나키스트스물 두 번째 도로시를 두고 한참 고민하였다. 아나키스트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신념을 가지는 것과 모든 신념을 부정하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는 일을 대비시키며 신념의 부정이 설정할 준거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시이다. 심각한 고뇌에 절실함이 담긴 서술이 돋보인다. 다만 주제를 좀 더 밀고 나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흔한 생각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 스물 두 번째 도로시는 모든 인류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소망들의 형상을 도로시라는 이름 안에 압축시키면서, 그런 소망들이 허상과 착시 속에서 헛되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손가락과 눈동자와 행성들의 궤적과 바람의 움직임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주제를 좀 더 밀고 나갔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지를 다루는 솜씨를 소중히 여겨,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선에 들지 못한 모든 사람들도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