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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20년 『문학사상』신인문학상 심사 총평

비평쟁이 괴리 2020. 12. 1. 19:44

※ 아래 글은 2020년 『문학사상』신인문학상 심사 총평으로 씌어진 것이다. 해당 잡지의 11월호에 실렸다. 달이 넘어가 잡지의 가정적 유효성이 소실되었으므로 이 란에 싣는다.

 

 

원하노니, “너희 시작이 기묘하니, 너의 끝은 창대하리라

 

신인문학상심사가 예년처럼 풍성하게 치르어졌다. 1380편의 시, 284편의 중단편 소설, 그리고 35편의 장편소설이 응모되었다. 평론 응모작이 20편으로 소략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심사자가 40여년 전 신춘문예로 등단할 때도 투고작이 15편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평론 지원자들의 수량은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인들의 감성주의와 연관이 있을 듯하다는 짐작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밝히려면 좀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여하튼 평론이 미적거리면 창작도 힘내기 힘들다. 특히 오늘날 평론이 사소화와 경직화의 흐름에 쓸려가고 있는 와중이라 걱정이 더 크다.

여하튼 창작 분야에서의 수량은 기대를 걸게 했는데 결과는 반반이다. 우선 재주가 엿보이는 신인들이 많았던 것은 흔감한 기분을 주었다. 그러나 재주가 곧바로 작품으로 현상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물의 편차는 심하게 갈릴 수 있다. 그 점에서 많은 투고작들이 입을 다시게 하는 전채(前菜)를 선보였는데, 주 요리가 진미를 제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출발점에 있는 신진에게 대가의 솜씨를 보자고 하는 게 오히려 그 신진의 진정한 가능성에 눈감는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획기적인 새로움은 언제나 완성의 형태로 미리다가오지 않으니, 지금의 눈으로는 미숙해 보이나 언젠가 틀림없이 오늘의 눈을 도려내고 새로운 눈을 장착할 수밖에 없게끔 하는 그런 격렬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당장 눈앞에 눈부시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밀하고도 신중히 그 싹을 찾아 기름진 토양으로 이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의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은 그런 마음으로 중단편 분야, 시 분야에서 각 두 사람씩 신인을 내보내는 과감한 시도를 한다. 대신 장편과 평론 분야에서는 신인을 내지 않기로 했다. 장편 분야에서 박동은의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와 정지윤의 악취가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확신을 주기에는 모자랐다.

시 분야에서는 임수현과 김광호 두 사람을 뽑는다. 빛의 보존법을 비롯한 김광호의 일련의 작품들은 시선이 특별하다. 그는 16mm 카메라로 자가 촬영(selfie)’을 하는 듯하다. 시의 화자는 대체로 모종의 상처를 입고 세상에 분노하는 존재다. 그런데 그는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깥에서 조감한다. “내가 지닌 빛이 자꾸 상한다. 내 빛을 살펴보기로 했다라는 구절은 그런 사정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이것이 특이점의 출발이라면 다음 단계에서 그는 렌즈를 후퇴시키면서 자기와 주변의 물상들 사이의 어지러운 어우러짐을 보여주면서 어지러움을 통해 삶에 대한 물음표들을 생산하며, 그 어우러짐을 통해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그럼으로써 셀피의 통상적인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인간사의 보편적인 모습을 체험적으로’-‘관찰한다. 물론 이것은 실제의 카메라가 아니라 언어의 카메라이기에 가능하다. 그 관찰의 결과가 얼마나 감응적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으나, 이런 도전은 멀티미디어의 압도적인 지배 속에 문학의 의미심장한 반격이자 새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게 한다. 복사하는 월요일을 비롯한 임수현의 작품들은 존재하지 않는 미궁에 대한 탐구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함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그것이 가능할 터인데, 그 확신을 입증하는 방법이 이채롭다. 그는 보이는 것들의 범상함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시의 화자가 세상 사람들 속으로 합류하는 자세와 조응한다. 화자가 세인들과 어울려 일상의 범상함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반복의 결함이 발생하고 그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로의 미궁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의 향긋한 냄새에서 조커적 저주가 웃음지으며, 부드러운 빵이 딱딱한 벽돌로 변형되는 식이다. 약점이 있다면 그 묘사가 풀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 압축 훈련이 필요하다.

중단편소설 분야에서는 이채산의 오늘부터 나도 라텍스베개 베고 잡니다와 오혜혁의 휴이의 휴일에 기대를 걸기로 한다. 휴이의 휴일은 한국 소설에서는 흔하지 않은 사색적인 소설이다. 거의 수필처럼 느껴지는 것은 두 인물이 한 뼘차이의 유사성에 의해서 하나로 겹쳐지면서 한 사람의 생각을 파문처럼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법적 특이성은 둘을 하나로 만들면서 동시에 하나를 둘로 만든다. 전자를 통해 소설의 주제인 AIDS환자의 고민에 독자를 집중케 하면서, 후자를 통해서 질병에 대한 마음의 변이들 사이의 차이와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기게 해준다. 이 변이들은 다시 하나에 가두어져 행동을 격발시키지 않고 부드러운 사색의 물결을 일렁이게 한다. 그 물결 위를 물 위로 떠오른 기포처럼같은 감각적인 비유들이 햇살처럼 비춘다. 잠잠히 휴식 중인 난바다 위에서 호흡 조절 훈련을 한다고 할까? 한국소설에 대한 관습적인 눈길로 보면 이 소설은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다. 오래 망설이게 한 까닭이다.

오늘부터 나도 라텍스베개 베고 잡니다는 괴상한 소설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노동자의 범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내용은 세상사람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세태 소설이지만, 어조는 동화이고 행동은 60년대식 위악성으로 가득차 있고, 상징 보조재들은 판타지이다. 이 희한한 혼성형식들을 꿰고 있는 한 가지 심지가 있다면, ‘바르게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심사자들은 그 심지가 꽤 굵다는 점에 동의하였고, 그에 기대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쨌든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작품에 기대를 걸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당선자들에게 모두 축하를 보낸다. 당부를 하자면 여러분은 이제 출발점에 섰을 뿐이니, 어떻게 달리느냐는 오로지 여러분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정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