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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21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3. 09:18

COVID-19 사태로 인한 장기간의 격리 상황이 문학 창작에도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예년에 비해 단순한 감상을 털어놓는 시들이 부쩍 줄어든 반면, 논리적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경향이 크게 늘었다. 이러한 경향은, 사적 경험을 그대로 시의 지면으로 끌어오는 최근의 일반적인 추세와 맞물려, 자신의 경험을 세세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을 성큼 신장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시가 되기까지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관건은 두 개. 하나는 개인적인 사건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그 사건이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보편적인 문제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 이 점이 부족하면 쓰다만 시가 되고 만다. 다른 하나는 이야기가 시의 중요한 바탕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지만, 시의 표면에서는 감각들이 반짝여야 한다는 것. 세칭 이야기시에서도 그를 돋보이게 하는 건, 사연이 아니라 표현이라는 점이다. 
투고된 92편의 작품 중에,「푸가의 기법」, 「관계의 두려움」, 「앵무새가 있던」, 「자폐적인 시」, 「플라밍고는 왜 동물원에서 날지 않을까」, 「주일미사」, 「눈」, 「둥글게, 둥글게」, 「어른」을 우선 검토작으로 골랐다. 
「푸가의 기법」, 「관계의 두려움」, 「자폐적인 시」는 두 개의 이미지 혹은 같은 사물의 두 현상을 선명히 대비시켜 주목을 끌었다. 관찰을 넘어 성찰에까지 밀고 올라가는 끈기가 부족한 게 아쉬웠다. 「주일미사」와 「어른」은 공정히 풀리지 않는 인생살이에서 배어나오는 애환과 절망과 물음을 차분히 반추하는 장점이 있다. 이런 감회를 번득이는 이미지로 톺아내면 그 고민과 물음이 만인의 화두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앵무새가 있던」과 「눈」은 상식을 뒤집는 통찰이 있고, 「플라밍고는 왜 동물원에서 날지 않을까」와 「둥글게, 둥글게」는 현실의 고통과 맞서는 끈기가 있다. 「눈」은 삶의 표면 밑에 잠복된 전복의 힘을 선명한 영상으로 환기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이미지들 간의 조응이 충분치 않았다. 「둥글게, 둥글게」는 세상에 대해 사람들이 부여하는 상징적인 의미와 기만적인 현실 사이의 어긋남을 화자의 삶에 입혀서 진솔한 질문의 집요한 운동을 밀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지가 단순해서 감각적인 강렬함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플라밍고...」는 동물원의 화려한 모습을 감옥의 이미지로 반전시켜 독자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혹 속으로 집어넣었다. 다만 이 디스토피아 안에 현실의 다채로움이 잘 용해되지 않아서 이미지의 찌꺼기가 남는 흠이 있었다. 「앵무새가 있던」은 상식의 반전, 끈질긴 사색, 투쟁의 의지가 모두 힘차게 작동한 시다. 굴종 속에서 저항을 길어내고 고난의 상황들을 연료로 사용할 줄 알며, 분출하는 의지들을 사건으로 엮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시의 길이가 긴 것은 때로는 시인의 잠재력을 암시하기도 한다. 당선작으로 선뜻 뽑은 이유가 여럿 있다. 축하를 보내며 정진을 바란다. 후보작의 주인공들도 자신의 재능을 시험한 만큼 분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