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14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시분야)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14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시분야)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3. 09:25

시가 정서의 표현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겪어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싸우는 사람만이 시에 전념할 수가 있다. 김은비의「속박」은 현실과 대적하고자 하는 의지를 열심히 표내고는 마지막에 그 대결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건 ‘나’ 자신과의 문제라는 깨달음을 대립구도의 간명한 변환을 통해 깔끔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재치가 돋보이지만 관념의 유희이기도 하다. 심은영의「행간의 좌초」는 글쓰기의 괴로움을 특정한 인생사의 실제 상황처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 놓고는 꼬리를 사리다 보니 뒤가 허망하다. 추운 가을날 낙엽을 관조하고 있는 이경후의「덮다」는 관찰이 섬세하다. 그럼으로써 외부의 풍경을 세계와 갈등하면서 화해를 모색하는 절실한 내면의 드라마로 변환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세목들 사이를 좀 더 유기적으로 연관시키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문지호의 「밀복」은 세계의 지배 질서에 의해 먹이로 삼켜지는 사람들을 밀복으로 비유하고, 복이 품은 독을 살아내고자 하는 독한 꿈으로 치환하면서, 세계와 사람들의 잔혹한 전쟁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은유의 착상이 참신하고 정황을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다만 갈등의 구체적인 정황을 암시하는 매개물이 없어, 이 정경을 사회적 성찰로 끌고 가기에는 부족하다. 반면 조주형의「가난의 굴레」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육’하는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시다. 생각은 단순하지만 그 생각을 표출하는 비유들은 강렬하고 제 스스로 움직여 사회적 대립 바깥을 감싸는 괴물스런 자연을 형성한다. 세상의 문제를 좀더 깊이있게 성찰할 수 있다면 좋은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밀복」과 「가난의 굴레」를 저울에 올려 놓고 고민하다가 「가난의 굴레」를 당선작으로 정한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의 수준이 마지막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