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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20학년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3. 09:21

투고작들을 읽으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을 생각한다. 위기가 닥칠 때 인간은 그냥 견디거나 패배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영역과 범주를 넓히면서 위기를 재구성하고, 자신의 관할 안에 두려고 온갖 궁리를 꾀한다. 궁극적으로 자신과 이웃과 환경 사이의 네트워크가 개편되고, 인간의 본성이 질적으로 도약할 계기를 마련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격리의 시간은 젊은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시야가 열리고 대상들과 교섭하는 방식이 다변화되는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예년의 투고작들에서 대종을 이루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사회라는 벨트 속으로 진입하기 전의 모든 입사준비자들의 생각은 거기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의 투고작들에서는 주제가 훨씬 넓었다. 자기에 대한 물음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명에 대한 객관적 성찰들도 눈에 자주 띄었다. 이를테면 「마스크」는 팬데믹이 야기한 삶의 아이러니컬한 현상들을 포착한다. 또 「소화(消化)」는 권력의 부당한 사용으로 유발된 사회적 불평등을 화자의 초라한 인생과 비교하면서 풍자의 날을 날카롭게 벼리고 있다. 다만 그 통찰들이 단품으로 끝나 시적 가능성을 점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외 「사소한 저녁의 날들」, 「누구나 그런 기억 하나쯤」, 「얼마나 많은 비를 더」, 「치킨 너겟」, 「장마: 인간적격」,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매우 강한 비와 매우 강한 바람」, 「개인에 관해 진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 재능을 엿보게 한 작품들이다.
최종적으로 검토 대상이 된 작품들은 「유령마」, 「오래된 아이」, 「반디푸르」, 「공포영화」이다. 
「유령마」는 현실을 엽기적 공포영화로 보여준다. 현실의 부패가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배경이다. 섬뜩한 묘사는 소름이 돋는 실감을 준다. 다만 불변에 대한 인식도 불변이다. 현실/이상의 대립이 도식화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오래된 아이」는 사회비판을 문명비판으로 넓히고 있다. 시에 의하면 우리는 진화 중이 아니라 퇴화 중이다. 그 역전을 비유하는 형상들이 구체적이다. 다만 근거가 박약하다. 「반디푸르」는 네팔 빈촌의 아이를 묘사하고 있다. 진짜 현실 속의 진짜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걸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따뜻하고 공감적인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동정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공포영화」도 현실의 엽기성을 영사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한국 교육의 오래된 현실이 밑바닥에 있고, 그 위에서 한국의 어린 학생들에게 유년의 트라우마가 침착하는 과정이 참혹하게 깔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정신적 상해를 넘어서기 위해 팔다리를 놀린다. 그 행위는 놀랍게도 그들에게 강요된 걸 되풀이하는 방식이다. 놀이터는 학원의 모사이다. 그러나 그 모사가 학원을 파열시킨다. 교육 현실이 균열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는 독자는 교육 혁명의 필연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중간중간 이미지가 끊기는 게 흠이다.
「공포영화」를 당선작으로 선한다. 아쉽게 탈락한 모든 학생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