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13학년도 연세문화상 시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13학년도 연세문화상 시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3. 09:28

늘 하는 얘기지만 시는 막연한 감상이나 사사로운 심정의 토로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삶의 기록이다. 사건이 있고 굴곡이 있고 반전과 완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장구한 이야기를 최대한도로 압축할 때 시가 태어난다. 김영건, 김학수, 김현지, 남권율, 박상경, 박연빈, 서지민, 이유진, 정원, 정환빈, 한수정의 투고작들은 시의 초입에까지는 왔다. 말이 과장되었거나 이미지가 조악하거나 생각이 짧다는 결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최지은의 「공허」는 특정한 사물을 삶에 대한 비유로 변용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능력을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로 발전시키기를 바란다. 서자헌의 「옛날 이야기」와 박준모의 투고작들은 시가 근본적으로 리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자헌은 사물을 관찰하는 눈을 감상 너머로 높여야 할 것이다. 박준모의 「서시-청동새」는 부동의 광물질에서 생의 약동을 읽어내었다. 구성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선 인위적인 조작의 취향이 너무 심하게 드러났다. 눈을 진정시키는 법을 배우기 바란다. 이명현의 투고작들은 마음의 격정을 선명한 이미지들로 치환시키고 그 이미지들을 요동시킴으로써 존재의 모험을 감행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렝보, 로트레아몽, 초현실주의자들이 갔던 길이다. 다만 말을 좀 더 줄이고 어휘들을 벼려야 할 것이다. 박준모와 이명현, 두 사람을 두고 고민하다가, 대학생의 시라는 점을 감안하여 모험 쪽에 점수를 하나 더 주기로 하였다. 이명현의 「젊은 날의 수채화」를 당선작으로 결정한다. 박준모의 가능성도 높으니 실망하지 말고 정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