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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8. 08:05

예심에서 올라 온 11편의 소설 대부분은 만화적 상상력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만화는 현실의 축약과 변용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건너뛰도록 하는 힘이 있지만, 그러나 그 대가로 현실로부터의 검증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김엄지의 돼지우리, 이정옥의 치코의 숲, 김미선의 미로가 마지막 후보작으로 거론되었다. 돼지우리는 현대인의 욕망을 돼지의 탐식에 빗대어 풍자하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작위적 설정이 진실에 다가가는 걸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치코의 숲은 유한자인 인간 삶의 근본적인 이원성, 즉 창조가 파괴가 되고 선과 악이 등을 맞대고 있는 상황을 환상적 형상들을 통해 추구한 소설이다. 데미안적 주제와 수미일관한 구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동원된 형상들이 적합하다기보다는 장식적이어서 그로 인해 소설이 공소한 난해성 속에 빠진 게 아니냐는 물음이 따랐다. 미로는 불우한 유년으로부터 벗어나 가까스로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한 상담원이 겪고 있는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두 가지 낯선 경험을 통해 충격적으로 부각되고 의미화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 과정을 통해 문명사회의 화사한 외관 뒤에 숨어 있는 정신적 불모성을 진지하게 되묻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문체를 다듬는 데 공을 들이면 좋은 소설세계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당선을 축하한다. (박범신·정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