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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대시 작품상'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10년 '현대시 작품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8. 08:03

순박한 격정의 개가

 

한국 땅에 시인은 밤바다의 별들처럼 많지만 시에 온 생을 바치는 시인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배한봉 시인은 그런 드문 시인 중의 하나이다. 그는 오랫동안 외롭게 묵묵히, 그러나 열정적인 도취의 상태에서, 시를 써왔다. 때문에 그의 어느 시를 읽어 보든, 시에 대한 순박한 격정이 진솔히 배어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오늘 검토된 시들에서도 우리는, 현실에서는 후다닥 지나가버린 봄내음과도 같은 신생의 씩씩한 기운이 줄기차게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새는 언제나 맨발이다의 제목이 그대로 암시하듯, 저 맨발의 새로운 생이 언제나종횡하는 게 배한봉의 시인 것이다. 그런데 저 맨발의 힘은 어디에서 솟아나는 것일까? 그것은 세상의 어둠의 무게가 압도적인 만큼 불가해한 비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밀이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신생의 비밀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절묘한 조사 바꿔치기를 통해, 그 비밀 속에 도사린 거대한 비밀을 장엄하게 보여준다. 맨 처음 맨발의 기운을 비밀로 보았을 , “저 맨발은 필시 우리가 양말을 신고 구두를 껴 신은 것보다 더 강한 무엇으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그 비밀 속의 비밀을 들여다 보니, “참 무겁고 힘든 저 맨발꽁꽁 언 세상 바닥을 양말로 구두로 껴 신은 저 강철 보행의 맨발이었던 것이다. 조사 하나가 세상의 거대한 중력을 순식간에 용출하는 운동 에너지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것이 시의 힘이다. 그 힘은 거듭 말하거니와, 시인의 시에 대한 순박한 격정으로부터 나왔다. 그 순정은 그의 시에 우리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수상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