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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8. 08:02

예심을 거쳐 올라 온 열 편의 소설은 대체로 구성이 안정되었고 제가끔 독특한 문체를 보여주었다. 한국 소설의 기초가 매우 탄탄하다는 사실의 증거로 여겨도 좋으리라. 박하의 오션 파라다이스, 오윤서의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동욱의 여우의 빛이 마지막까지 논의되었다. 오션 파라다이스바다 이야기라는 투기성 오락에 중독된 사람의 시시각각으로 돌변하는 정신적 상황을 생활상의 궁핍에 비추어 그 절박함과 그 비루함을 동시에 임계점까지 끌고 간 작품이다.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는 배가 끊긴 섬에 남겨진 여인과 두 등대지기 사이에 조성된 관계의 미묘한 심리적 긴장과 그것을 미리 판단해 버린 여인의 불행한 파국을 재치있게 연결시킴으로써 생각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운 작품이다. 여우의 빛은 청부 살인업자라는 이색적인 인물을 내세워 산다는 것의 근본적인 잔인함과 사는 자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치밀하게 반추한 작품이다. 심사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쉽게 합의하였다. 다른 작품들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으나 여우의 빛만이 소설이 문학인 이유를 가장 확실하게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작품들에서 문체가 상황을 정서적으로 강화하는 보조적 장치라고 한다면, 이 작품에서 문체는 상황과 길항하면서도 상황을 정돈하고 동시에 상황을 움직인다. 당선을 축하하며,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오정희, 정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