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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대시 작품상'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09년 '현대시 작품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8. 08:01

현대시 작품상은 말 그대로 현대시에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modernity란 그 어원modus으로 보자면 새로움이다. 현대란 새로움이 존재의 원리인 시대이다. 이것은 현대의 주인인 인간이 현대의 이름으로 세계의 주인임을 자처하기 시작한 때부터 인간에게 불가피한 숙명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는 낡은 것과의 결별을 그것은 뜻할 테지만, 그러나 그 결별의 양식이, 논리와 윤리, 경제 그리고 감각의 차원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새로움의 형태는 무한히 다를 수 있으며, 그 기능 역시 그렇고, 그것의 수명 역시 마찬가지다. 그 논리의 연장선에 있는 어떤 좁은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무조건 새로운 게 좋은 게 아니고, 우리가 새롭다고 생각하는 게 꼭 새로운 게 아닐 것이다. 가장 현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게 실은 낡아 빠진 것의 변이종일 수도 있고 매우 낡은 것처럼 보이는 게 실은 유의미한 현대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올해의 현대시 작품상 수상작으로 조연호씨의 천문이 결정된 것은 위의 물음을 새삼스럽게 제기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현대시를 원하는가? 21세기 들어 그에 대한 담론이 번성했으나 조밀한 대답은 아직도 언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우리가 확인하는 건 충동의 과잉이고, 그로 인한, 현대시를 창조하려는 의지의 파편화이다. 때때로 존재하는 세계의 어느 한 면을, 가령 그 윤리를, 그 언어를, 혹은 그 감성을 파괴함으로서 새로운 시의 모형을 제공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지만, 실상 현대시의 새로움은 오직 총체성의 형식으로만 수행될 수 있다. 현대시는 부분적으로 보완되거나 갱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성의 숙명이다. 현대성의 어떤 양태든 자신의 근거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총체성에 대한 요구가 획일성으로 퇴색하거나 제대로 의식되지 않을 때, 위장된 현대성과 정신병리학적 망상이 출몰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는 오늘의 한국시에 관여해 온 사람이라면, 작게든 크게든, 누구나 느끼고 있는 점일 것이다. 나는 본심에 오른 시들이 모두 그런 고민의 결과들이라고 믿는다. 그 중에서도 조연호씨의 시에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현대성의 과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스스로 탐색하고 스스로 대답해 온 흔적이 역력하다. 반복적으로 사용된 스스로라는 어사는 그가 다양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시 유파의 어떤 곳에도 소속되지 않음을 가리키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오늘의 온갖 탐색을 한데 뭉뚱그리겠다는 태도로 자신의 작업을 고집스럽게 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작업을 통해서, 그는 성스러움과 비속함, 묘사와 행동, 실제와 당위, 관념과 형상, 지상과 천상 등 대극적인 것들이 순식간에 맞붙었다가 영원히, 상대방을 파괴하는 힘을 실은 채로, 어긋나는 형국을 시행/연출하고 있는 한편으로, 동시에 그 형국을 스스로 고전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막간의 풍경을 제공한다. 그 고전주의자의 태도는 매우 자기 모멸적이다. 그 태도 자체가 맞붙었다 어긋나기 때문이다.

조연호씨의 시의 이런 노력이 언젠가 새로운 현대성의 놀라운 국면을 열어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