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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02년 '현대시 작품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0. 18:08

오랫동안 한국시가 낮은 포복을 계속하고 있어서인가? 새삼 시의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찰나 같은 인생에서 얼마나 달라질 게 있으랴? 그러나 예전에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달라지지 않으면 까마귀가 된다.” 완성의 순간에 말이다. 또 어떤 시인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을것을 강조하였다.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것이 실은 찰나 같은 인생을 지나 시대들을 이월하며 끝없이 다른 울림을 갖는 시적 장치를 내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김승희씨는 예전의 화려했던 수사를 생의 부정성 쪽으로 강력하게 잡아 당기고 있다. 그러자 그 전에는 난분분하던 이미지들이 광기의 천조각으로 펄럭이고 있다. 대지에 묶인 채로 허공으로 비상하려고 몸부림치면서. 이 몸부림에서는 핏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럼에도 이 몸부림 속에는 스스로를 비애의 표정으로 처연히 바라보는 눈길이 있다. 그 눈길이 이런 탁발한 표현을 가능케 한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도 그랬으리라. 깃발은 들었고/자유는 밀리고.” 물론 이것은 삶에 대한 깊은 인식에 뒷받침되어 있다.

정일근씨의 시가 아주 원숙해지고 있다. 타고난 서정 시인인 그는 초기에 예쁘게 쓰려는 욕심이 너무 강해 자주 시를 아담한 정물로 만들곤 하였다. 그런데 그런 단아취미를 이제는 거의 벗어버렸다. 그 대신 그에게 생겨난 것은 대상에 대한 놀라움이다. 그 놀라움은 그가 남몰래 자부하고 있던 언어로도 충분치 못할 광경들을 접했을 때 촉발되는 놀라움이다. 그러나 그 놀라움 덕분에 그의 언어는 갑자기 능란한 수단에서 살아있는 생명으로 탈바꿈한다. “투루판의 여름 포도 향기 같은 달콤함으로/음악처럼 나에게 감겨드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우루무치에서의 사랑으로 나의 피는 수평을 잃어버렸고에서의 여름 포도 향기 같은”, “음악처럼”, “수평을 잃어버렸고등등의 표현들을 보라. 이것은 썩 수사학적(인공적)이면서도 동시에 본 그대로의 광경, 자연발생적인 느낌을 기술했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자연스럽다.

이재무씨의 최근 시를 읽다 보니 그가 즐겨 다루었던 작은 원들, 이를테면 밥사발, 엄마 무덤 들이 큰 원으로 확장되었음을 알겠다. “돌마다 새겨진 한 제국의 수난과 영광에/눈을 맞추다 보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직선이 아닌 하나의 원 안에 다 들어있다같은 시구에 제시된 원이 그렇다. 예전의 원,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예전의 구()가 감각적 체험의 그것이었던 데 비해, 세상이 통째로 들어가는 오늘의 큰 원은 인식적 경험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이렇다는 것은 그의 시세계가 세상과의 화해 혹은 세상에 대한 깨달음과 겸허의 발견이라는 방향으로 넓혀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게다. 그런 깨달음이 가장 멋지게 드러난 것은 세상은 잘 닦은 유리알처럼 투명, 투명하여서/갑자기 생이 눈부셔 어리둥절해지는 오월 한때를같은 구절로 보인다. 거기에서 원은 모든 것을 눈부시게 하는 거대하게 빛나는 원이면서 동시에 잘 닦은 유리알처럼 손의 감촉에 아주 생생한 무엇이다.

김영승씨는 자유자재한 말솜씨를 뛰어나게 구사하는 시인 중의 하나이다. 그 점에서 그는 미당과 정현종 시인의 뒤를 잇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한데 하지만 그 솜씨가 세계와 맺는 양식은 아주 다르다. 미당에게 그것은 보편적 설화 세계에 침잠함으로써 활성화된 것이라면 정현종 시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온갖 사회적 억압과 싸우는 방법론이자 생명적 원천으로서 약동했던 것이다. 김영승씨에게 있어서 그것은 애초에 사회적 금기를 희롱하는 개인적 유희로 나타났었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유희는 자신에 대한 조롱으로 심화되었다. 혹은 바뀌었다. 그러나 그 심화 혹은 변화가 그저 시적 세계의 극단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의 육체를 저미고 있는 그의 혀는 언어의 쾌락과 육체의 몰락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반추되과 인식되며 반추되며 성찰되고 비판되고 수용되는 장관의 묘사를 이루어낸다. 그가 저무는 만큼 세상이 들어설 공간이 더욱 넓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육체가 작아진 만큼 그의 혀에 달린 인식의 눈은 세상의 높이로 커졌기 때문이다.

상이란 본래 덤이다. 김영승씨에게는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세속적 기쁨과 재회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축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