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04년 '현대시 작품상'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04년 '현대시 작품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0. 18:09

막연한 예감이지만 서서히 시가 기운을 회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1990년대부터 시에게 강요된 문화적 방출 이래 정신적 사막으로의 디아스포라diaspora를 겪어야만 했던 시들이, 저마다 당도한 곳에서 주거지의 주춧돌을 놓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정확한 지형도를 작성하는 일을 숙제로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사막에서 생존할 시의 야수들이, 단순히 예전의 정신주의나 서정시학, 민중시, 실험시 등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신의 고통 끝에 진화한 것임은 얼마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을 어림으로 말하자면, 시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존재론적 자연성을 시인들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으며, 따라서 시란 있을 만한 것인가라는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물음이 하나의 염기로서 시의 DNA에 내장되었다는 것이리라. 예전에 가장 근본적인 몇몇 시들의 특성이었던 그 염기가 이제는 모든 시의 필수 요소가 되었으며, 그 염기가 발견되지 않는 시는 설혹 시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저 유사품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실로 나는 후보작으로 오른 마흔 세 편의 시들의 거의 대부분에서 그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집중적으로 거론된 몇 작품만을 두고 이야기하면, 항상 세찬 입심의 소유자인 허혜정은 미완성의 꿈에서 그의 입심을 친구여 아직 나는 모른다라는 고백의 물레로 자아 유장한 도시 탈출의 모험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수명의 벽을 바라보는 눈은 벽에서 벽처럼 고여 있는 도끼꺼내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고, 이동백의 가일리아직 숨이 붙어 있는 / 이파리들 / 자꾸만 미끄러진다는 은근한 묘사로 서정시의 존재형식의 모종의 변이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정국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는은 익숙히 들어온 내면의 외침을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단 한줄의 비문(碑文)’ 사이에서 요동치게 하는 것이고, 남진우의 겨울일기는 시인 특유의 화려한 신화적 상상력을 타이타닉의 깊이로 가라앉히는 것이며, 박주택의 시간의 육체에는 벌레가 산다냄새로 항거하내장의 악취로 시간의 육체에 난 복도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육체에는 벌레가 산다가 최종 선택된 것은 아주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휘의 강력한 힘과 정밀한 구성으로 밀도가 높은 시들을 한결같이 생산해 온 이 시인에게 여직 이런 잉여의 기쁨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은 무척 의아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