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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쓴다는 것-김현 비평의 의의

비평쟁이 괴리 2023. 4. 30. 12:51

김현 선생은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쓴 첫 세대의 비평가였다. 그 한글은 세종의 훈민정음도, 『독닙신문』의 ᄒᆞᆫ글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생활에 뿌리내린 한글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민족국가로서의 한국이 불구였듯이 우리의 한글도 아직 대가 약했고, 외국어의 범람 속에서 위태로웠다. 김현 선생은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적이지 못한 언어로 ‘민족’의 문학을 외쳤을 때, 그이는 민족문학의 실체를 글로 보여주었다. 선생이 하신 크고도 다채로웠던 모든 작업들은 이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김현 선생은 문학평론가였고, 문학사가였으며, 문학 연구가였다. 평론가로서의 그이에게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해석이, 문학사가로서의 그이에게서는 근대적 역사의식이, 문학 연구가로서의 그이에게는 정치한 분석이 두드러졌지만, 그것들은 선생의 모든 글들에서 아름다운 한글과 더불어 하나로 융해되어 나타나, 김현적 풍경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독특한 글의 풍경을 펼쳐내었다. 선생의 첫 평론집은 『존재와 언어』(64년)이지만 그이의 이름과 함께 오래 기억될 첫 평론집은 『상상력과 인간』(73년)이었다. 바로 직전에 문학과 지성의 네 김씨가 공저한 『현대한국문학의 이론』(72년)이 있었다. 그 시기에 선생은 상상력의 움직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해 있었으며, 그를 통해 한국문학의 양식화의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비평의 질료는 심리이었지만, 비평의 형상은 한국문학의 독특한 이미지와 구조들이었다. 초기의 그이가 심리비평가였으면서도 문학을 문학인의 심리로 환원시키는 일반적 심리비평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선생의 비평은 『한국문학의 위상』(77년)에 이르러 중대한 변모를 겪는다. 모든 것을 유용성의 척도로 재는 이 시대에 ‘문학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 위에서 씌어진 그 책에서 선생은 문학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 천착하여, 문학의 발생 과정, 문학과 사회의 갈등과 싸움, 문학의 구조와 사회적 기능, 문학의 변모과정을 이론적으로 규명하였다. 만일 요약이 가능하다면, 그 이론은 “문학은 써먹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해 반성할 수 있게 하며, 억압 없는 사회를 꿈꾸게 해 준다”는 제 1 명제와 “문학의 변모는 전통의 단절과 감싸기라는 복합적 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제 2 명제로 집약할 수 있다. 그 이후의 선생의 비평은 성찰과 꿈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와 정치한 분석과 섬세한 해석으로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이의 비평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동안, 그러나, 사회는 폭력과 억압의 극으로 치달았으며, 그것은 선생에게 세상은 정말 살만한 것인가라는 고뇌와 그럼에도 삶은 살만한 것이고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주었다. 그 고뇌와 의지 속에서 선생은 모든 인간 욕망들의 뿌리로 내려가 억압적 세계의 기본적 욕망, 억압과 꿈의 미묘한 얽힘 등을 살피고, 어루만진다. 그것이 김현 비평의 세 번째 단계이며, 그 결정은 팔봉 비평문학상의 수상 평론집인 『분석과 해석』(88년)이다.
김윤식 선생과의 공저인 『한국문학사』는 이식문학사관과 전통매몰사관을 극복하려는 의지 속에서 태어났고, 민족적 역사의식과 실증과 분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문학사였으며, 그이의 외국문학연구는 언제나 쉽고도 독창적이었다. 선생은 외국문학의 이론들과 대화하였고, 그것들을 한국적 맥락 속에 재구성하였다.
󰏔 1990. 6. 29, 세계일보, 한글로 사유하며 한글로 글을 쓴 민족문학가 -48세로 타계한 김현 씨의 비평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