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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대법관의 줏대 있는 시 읽기-유종호의 『다시 읽는 한국 시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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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대법관의 줏대 있는 시 읽기-유종호의 『다시 읽는 한국 시인』

비평쟁이 괴리 2023. 3. 26. 04:34

다시 읽는 한국 시인』(문학동네, 2002)은 문학대법관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유종호 교수의 비평적 면모를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온당한 해석을 위한 세심한 고려와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솜씨, 그리고 편향된 해석들에 대한 엄한 지적들로 이루어진 각편의 글들은 두루 모범적 판례로 기억해두어도 좋을 것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유종호 비평의 문장(紋章)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새삼스레 풀이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비평가의 입장적 특성 말고도 주목할 점이 세 가지 있다. 그 세 가지가 모두 제목인 다시 읽는 한국 시인다시에 함축되어 있다.

우선, 이 책은 임화, 오장환, 이용악, 백석이라는 4명의 월북 시인을 다루고 있다. 잘 알다시피, 네 시인은 30년대에서 625 전까지 한국시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 시인들이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90년대 이후에야 정상적인 연구가 가능했던 시인들이다. 이 책은 우여곡절 끝에 한국시의 지평 안으로 복귀한 네 시인의 시세계 전반을 검토하고 대표작들을 가급적 꼼꼼히 읽어보려는 시도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 시도에 저자의 감동적인 소회가 얼마간 없을 리가 없다. 저자는 분명 이미 오래 전에 이들의 시를 읽었었다. 그러나 독서의 결과를 글로써 타인들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저자는 마침내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작정하고 그것을 실행하였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다시 읽는다되살려 읽는다혹은 이제는 말 할 수 있다와 동의어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옛 시인들의 널리 알려진 시들을 다시 읽는 것만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네 시인이 금기로부터 해방되었다면, 저자의 시 읽기는 거꾸로 이 시인들의 금기 속으로까지 들어간다. 다시 말해 월북 이후에 씌어진 시와 문학 활동을 살피고 분석하였다. 물론, 이에 대한 연구가 그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그것들은 실증적 보고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저자는 실증을 넘어 문학적 성취를 가늠하고 음미하려고 하였다. 그럼으로써 시인들 각각의 시 생애 전체를 복원하려고 하였다. ‘다시 읽기는 여기서 온전히 읽기, 혹은 이해의 완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의 확장을 함의한다.

마지막의 다시는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것이다. 저자는 네 시인을 다시 읽으면서 그동안 한국문학연구를 지배해 온 통념을 뒤집는다. 네 시인에 대한 주류적 관점이 전언 중심에 사로잡혀 목청 높은이론적 시인을 고평하였다면, 저자는 전언보다 문학적 됨됨이에 주목을 하고 작품들의 실감과 완성도 그리고 한국문학의 자원개발에 얼마나 만큼 기여했나를 살핌으로써 의미의 그래프를 정반대로 그린다. 문학에 대한 저자의 지론이 간곡히 실천된 이 작업은 주류적 해석의 압도적인 영향력에 맞선 힘없으나 앎을 가진 사람의 소신 있는 주장이자, 주류로부터 홀대된 문학의 음지에 대한 옹호이며 동시에 난폭운전과 취중운전이 자행되고 있는 우리 문학의 현주소에 대한 강력한 계고의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다시 읽기달리 읽기, 올바로 읽기의 뜻을 갖는다.

이 세 특징의 조화 속에서 이 책은, 언뜻 보이지 않으나 아주 운동성이 강한 체계를 이루어내고 있다. 네 시인을 배열한 순서에 대해 저자는 평가의 함의는 있지 않다고 서문에서 적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의 눈으로 보면, 이 책은 전언숭상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해 낭만적 허영에 대한 경고를 거쳐 완미한 시가 주는 감동에 대한 음미와 그 감동의 원천에 대한 이해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이 과정은 또한 시가 재단적 시론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그 스스로 살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읽는 한국시인의 체계적 운동성은 심화의 운동이자 동시에 열림의 체계이다.

󰏔 2002. 9, 하늘북, 시의 감동, 그 원천에 대한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