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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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육체로 부활할 -김현 문학 전집에 대하여

비평쟁이 괴리 2023. 5. 6. 07:48

가고 온다. 무엇이 가고 오느냐 하면, 김현이 가고 온다는 것이다. 김현은 1990년 6월 27일 새벽에 음침하게 매복해 있던 죽음과의 줄다리기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꼬박 3년 만인 엊그제 27일 김현 문학 전집 전 16권이 완간되었다. 전집 완간과 더불어 김현은 마침내 다시 왔다. 물론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오지는 않았다. 김현 전집은 1991년 6월부터 6개월 간격으로 모두 5차례에 걸쳐 출판되었다. 김현은 그가 죽은 날로부터 지속적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파도는 3년 동안 죽음과 삶 사이의 방파제를 두드린 끝에 드디어 범람하였다.
그 해일, 그것은 지금․이곳의 세상을 소리없이 넘실댄다. 귀가 그것을 부인해도 몸은 그 은은한 파동의 떨림을 들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진동에 당황하고 버겁고 또 속살을 파고드는 아픔으로 뜨끔할 것이다. 우선은 가고 온 것이 김현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지로는 한 시대가 육중한 몸을 뒤채며 몰려왔기 때문이다. 무슨 시대가?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의 동반자이건 추적자이건, 그것을 4․19세대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한국문화의 주체적 패러다임을 만든 세대란 말이다. 그 세대와 함께 한국현대사는 처음으로 제 손으로 역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제 강점과 분단의 비극을 딛고 4․19혁명은 한국인이 그 스스로의 의지와 도구로써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과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물론 너무도 긴 수탈 끝이라 문화의 자원도 문화인의 기력도 온전한 것은 제대로 없었다. 그러나, 4․19세대는 그 몸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역시 그 몸으로 한국의 형상을 그려나갔다. 그들의 역사쓰기는 그러니까 비문을 새기듯이 쓴 것도 아니고 습자를 하듯이 베낀 것도 아니라, 제 몸을 허물고 녹여 한국의 정황 위에 부어서 그것을 양각된 문화로 다시 태어나도록 쓰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그 몸이 곧 그 정신이었다.
김현 문학 전집의 첫 번째 의의는 4․19세대의 정신사적 궤적을 여실하게 그려보여 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한국문화의 이념형을 찾으려는 야심만만한 기획이 압도적인 서구문화의 밀려옴과 동양문화의 저 쓸쓸한 퇴락 사이에서 저것도 이것도 아닌, 그러면서 저것이면서 동시에 이것인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엎어지고 깨지면서 주파한 정신의 역사가 고스란히 그곳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역사가 어떻게 변주되어갔는가? 그것은 4․19세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최일남의 『숨통』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듯이 낙망과 변절과 저항과 초월의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있었다. 김현의 궤적은 거기에서 4․19세대의 전체사로부터 한 4․19세대의 개인사로 몸바꾼다. 그러나, 그 개인사는 전체사의 하위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전체사의 병행 세계로서의 또 하나의 역사이다. 그것은 전체사의 형성을 돕고 또 전체사의 움직임에 저항한다. 그럼으로써 전체사의 공간을 넓힌다. 다시 말해, 그것을 열린 체계로 만든다.
그 또 하나의 역사가 이룬 세상이 무엇이었던가를 지금 모두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김현 연구는, 전집의 완간과 함께 이제 비로소 출발선에 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모든 김현 연구는 반칙이란 말인가? 아니다. 전집 완간은 보다 튼튼한 기초가 닦여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모두가 제 목소리로 말할 일일진대, 나는 그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하겠다. 한국문화의 이념형을 만들겠다는 그의 초기 기획은 실체에 대한 집착을 서서히 버리고, 문화들의 관계를 탄력적인 수용과 반성과 재창조의 열린 관계로 만드는 공간이 문학의 자리이며, 그 문학의 자리를 최대한도로 넓혀야 한다는 인식과 실천으로 재구성된다. 왜 최대한도로 넓혀야 하는가 하면, 문학은 모든 것을 유용성의 척도로 재고 획일화시키는 이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반성과 발견의 모든 움직임들이 “고통하는 축제”로 함께 뛰노는 가장 섬세하고 활기찬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감과 반성과 발견의 문학은 80년 이후 끔찍한 욕망들의 뿌리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말년의 김현에게 그것은 너무도 괴로운 광경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이는 심연과 안 보이는 역사전망”이라고 쓴다. 그는 절망한 걸까? 아니다. 그는 심연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눈은 꿰뚫기 위해 존재한다. 심연을 본 그는 심연에 구멍을 내서, 안 보이는 역사 전망에까지 이를 긴 굴을 판다. 문학은 욕망들의 뿌리이다. 아니다. 문학은 그토록 복잡하게 엉킨 뿌리들 사이에 묻은 흙이고 틈새이다. 문학은 욕망들이 들끓는 세상을 비추이고 그 의미를 묻는다. 거기서 그의 문학은 욕망 자체가 아니라 욕망을 담는 가형성의 용기가 된다. 모든 욕망들을 한데 모아 반죽하는 그릇, 우글거리는 욕망들이 몽땅 흘러들고 빠져나가는 둥근 반지, 그 욕망들이 살을 이룬 굴대를 굴리는 바퀴와 같은 것이 된다.
김현 전집은 발견된 그의 모든 글을 모아놓고 있다. 문학평론, 이론연구, 문화평, 수필, 소설, 일기 등등이 망라되었다. 김현의 문화적 관심의 폭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 엄청난 양의 글들을 김현 전집 간행위원회는 특정한 기준과 방침에 의해 분류․재구성하였다. 우선, 한국문학분야의 글들과 프랑스문학분야의 글들 그리고 에세이 류의 글들로 삼등분하였다. 다음, 각 분야마다 이론적 성격의 글들과 실제비평적 성격의 글들을 나누고, 그것들을 각각 시기별로 배열하였다. 그리고 기타 텍스트들이 자료집에 실렸다. 이 전집의 의의는 글을 모아놓는 데에 그치지 않고, 특정한 관점과 원칙에 의거해 편집하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김현 전집도 그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대화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집자의 주석은 미처 마련되지 못했다. 글의 개작 여부, 글들 사이의 관계, 글이 씌어진 정황 및 글의 반향 등등이 주석을 통해 제시되어야 했으나, 그것은 김현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선결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이었고, 이번 문학 전집은 갓 태어난 아기 전집에 불과했던 것이다. 훗날의 전집들은 다시 시작할 것이다. 전집이 대화의 자리라면, 의당, 전집 자신이 끊임없이 개편되어 나갈 것이다.
6월 26일엔 전집 완간 기념 및 3주기 추도를 위한 행사가 경기도 양평군의 김현 묘소에서 거행되었다. 고인의 스승인 정명환 선생으로부터 나어린 후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그 자리에서 정명환 선생은 고인의 육체와 정신의 누룩됨을 말씀하였다. 무덤에 돋아난 푸르른 잔디에 영양을 공급한 그의 육체와 남은 문학인들에게 영원한 생기를 제공할 정신에 대해서. 그렇다. 모든 것은 그렇게 타자의 육체로 부활하는 것이다. 
󰏔 1993. 6. 29, 중앙일보, 김현 전집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