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불꽃의 말-채광석의 『민족문학의 흐름』 본문

문신공방/문신공방 하나

불꽃의 말-채광석의 『민족문학의 흐름』

비평쟁이 괴리 2023. 3. 19. 18:19

채광석 평론집(『민족문학의 흐름』, 한마당, 1988)이 출판되었다. 그의 사후(死後) 9개월만의 일이다. 그는 80년대 문학의 한 두꺼운 흐름을 온몸으로 밀고, 끌고, 이고 나간 첨단의 이론가였고 치열한 실천가였다. ‘온 몸으로’, ‘첨단의…’, ‘치열한’의 강조사들은 고인에 대한 의례적인 찬사가 아니다.
그는 그 말들에 합당한 문학인로서의 삶을 보여주었다.
‘삶의 전 부면에 있어서의 민중주체에 의한 민족해방’과 ‘그 운동을 위한 문학의 복무’로 요약할 수 있는 문학관의 포스터 역할을 했던 그의 비평은, 그 밑바닥에 역설적이게도 민중의 힘에 대한 낙관적 확신이 아니라, 민중의 거듭된 ‘거덜남’과 ‘으깨어짐’을 현실인식으로 깔고 있었다. 유신과 5월을 겪은 세대에게 그 좌절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침없이 뛰어넘는데, 그 방법은 의미내용의 뒤집기였다. 그는 민중에게 가능한 새로운 종류의 삶의 형식들을 그들의 생활 속에서 찾는 대신에 민중의 거덜남은 곧 그만큼 체제에 물들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따라서 그것은 수동적 박탈이 아니라 능동적 버림과 거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그렇게 뒤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뽑아낸다.
기존의 모든 소시민적 문학의 폐기와 민중 주체에 의한 문학의 주도라는 이론은 그러한 해석의 반전에 기대어 있다. 구조를 그대로 둔 내용의 뒤집기였기 때문에 그의 비평은 단선적이었으며, 뒤집어진 내용이 있어야 할 유일한 길, 즉 절대적 명제로서 주어졌기 때문에, 그의 비평은 직선적이었다. 그는 그 명제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가르고 평결을 내렸다. 그것에 어긋나는 어떠한 것도 그의 유죄선고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함은 그가 움켜잡은 그 관념을 끊임없이 생활과 문학 속에서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의 직선적 운동은 편(偏)향적이지 않고 편(遍)향적이었다. 그는 문학이라는 광활한 숲을 뚫고 나가면서 자신과 배리되는 모든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해석의 장을 벌리고 늘려나가면서 설명의 밑줄을 그었다.
그 확장과 밑줄긋기를 통해 그는 모든 문학적 사실들을 자신의 체계 속에 통합하려 했다.
그러한 통합의 운동은 그의 글쓰기에도 작용한다. 그는 관념을 관념 자체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관념의 생경함을 일반대중의 일상어, 속어, 은어 속에 녹인다.
그의 비평적 언어는 대중의 생생한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육체성과 직접성’의 ‘말’로 구성된 대화의 언어다.
말의 대화는 일회성을 지향한다. 그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것은 언제나 한번 써먹히고, 다른 것을 위해 재빨리 소멸되려 한다. 채광석의 언어는 비평이 일회적 소모품이라는 극단적 이론을 체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문학관이 민중 주체를 위한 문학의 복무라 한다면, 그의 언어는 그 관념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문학적 사실들과 언어를 자신의 관념속에 통합하면서 그은 밑줄은 짧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꼭대기의 관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의 비평은 그가 모든 것들을 아우르려고 한 그만큼, 비좁게 들어차서 관념의 거죽을 밀고 나오려 하는 그것들과, 그것을 가두려는 관념 사이의 긴장 때문에 늘 팽팽하게, 탱탱하게 휘어진다. 하지만 그는 들어찬 것들이 관념의 거죽과, 그리고 서로 맞부딪치며 일으키는 자연발생의 불로 몸을 태우며 질주해나갔다. 그 불꽃의 질주 때문에, 그는 갔지만, 아무도 그를 보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민중문학의 상징으로서 활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하자면 그는 이제 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손 없는 글장이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활용하든 간에 무한정 너그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의 손 없음을 기화로 그를 성화(聖化)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것에는 혹시 계산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을 보려고 고개를 드는데, 문득 그 생각이 뒷골을 친다.
󰏔 1988. 5. 4, 한국일보, 민중문학의 상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