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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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공방/문신공방 둘

시가 되살아나고 있다

비평쟁이 괴리 2024. 2. 16. 19:58

※ '문심공방 둘'에 실린 글들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씌어진 년도를 유념하고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80년대에 절정을 맛보았던 시는 한동안 사소한 음향으로 잦아드는 듯 싶었다. 시는 화살과 같은 것이어서, 핵심에서, 언제나 핵심에서만 놀려고 한다. 그러니, 중심이 와해된 시대에 시가 덩달아 허물어져내리는 것은 예정된 운명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시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라지기는 커녕 시는 시방 대량생산 중이다. 그러나, 시에 기생해 성장했던 온갖 문화적 원소들, 감성, 이미지, 리듬, 기지 들이 문자의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가, ‘직접성’의 이름으로 정의할 수 있는 현란한 새 문화 체제들을 이루게 되면서, 시는 오직 문자의 시원만을 재산으로 갖게 되었다. 성(聖)󰠏문자가 붕괴되고 있는 세상에서 문자의 시원을 고집한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리고 불행을 자초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시들은 도를 터득하고, 어떤 시들은 예전의 자신의 기생물들 속으로 쭐레쭐레 셋방을 차리려 들어간다. 요 근래에 시는 도와 상품 사이를 방황하였다. 시를 텅빈 원형으로 비워두고 도의 세상으로 상품의 세상으로 줄기차게 땅뜀을 하였다.
그렇게 내 눈에 비쳤을 뿐일까? 최근의 시들은 시인들이 시의 망가져가는 폐허에 여전히 남아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오만한 해탈의 포즈는 실은 자꾸 무릎이 꺾이는 직립인의 마지막 안간힘같은 것이었음을, 그들의 경쾌한 율동은 독분을 뿔뿔 날리고 있음을, 그들은 그 안간힘으로, 그 독분으로 둔한 내 감각을 강타한다.
최근에 발표된 시들만을 꼽자면, 황지우의 「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세계의 문학』), 이성복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문학과지성사)과 ‘겨울 비가’ 연작(『문학과 사회』), 박노해가 옥중에서 상자한 『참된 시작』(창작과 비평사), 김혜순의 「 슬픈 서커스」(『창작과 비평』), 이문재의 『산책시편』(민음사), 황인숙의 「 생의 찬미」(『문학과 사회』), 유하의 「 향기의 낭떠러지」(『문예중앙』), 이태수의 『꿈 속의 사닥다리』(문학과지성사), 유병근의 『설사당꽃이 떠나고 있다』(전망), 신협의 『어린 양에게』(대교출판) 등으로부터 나는 고압전류로 흐르는 시의 부르짖음을 듣는다.
이 시들에 대해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으니까, 거칠게 한다발로 묶어서 그들의 힘의 기둥에 대하여 말하기로 하자. 그것들이 보여주는 시의 오늘의 가능성은 시인들이 망가진 중심에 남아있으려고 애씀으로써, 거꾸로 한계에 위치한다는 데에 있다. 무슨 한계에? 그 한계는 현실개조가들의 상황의 한계가 아니며, 내면주의자들의 내면의 바닥도 아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삶의 한계이다. 그것이 그냥 삶의 한계라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이항 대립 사이에도 위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의 밖에 위치하면서도 무가 아닌 것. 그래서 끝끝내 모든 것에 저주를, 그리움을, 환희를 쏟아붓는 것. “벙어리 그림자”의 딴지걸이(김혜순),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황지우)는 선언, 그러나, “꽉찬 幻化”로 울기(이성복), 저마다 죽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죽지 않기, 그래서 “정붙일 데 없어지기”(황인숙), “환멸의 힘으로 바라보”기(유하), 소박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신협)가 그 몸짓들이라면, “그대 기쁨의 처마에서 툭/ 떨어지면서 그날부터 파랗게 고여/ 거미줄 만들었거늘, 이제/ 소리쳐 부르지 않을”(이문재) 거미 여인과, 찬 바람에 찌렁찌렁 종우는 ‘나’(박노해)와, “사닥다리 끝에서 어쩔 수 없이/ 거꾸로 내려오는 나”를 응시하는 나(이태수), “세심교 교각을 붙잡고 맴돌며” “제 발바닥을 교각에 싹싹 문지”르는 물(유병근)이 그 형상들이다.
이 몸짓들, 이 형상들을 두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하는 독자가 있다면, 언제나 현명한 그대여, 이 시대에는 피안을, 전망을 부재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힘이다. 그것이 당신을 도피로부터 미련으로부터 체념으로부터 박탈해내는 힘이다.[1993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