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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의 『엘리스 엘리스 하고 부르면』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우다영의 『엘리스 엘리스 하고 부르면』

비평쟁이 괴리 2021. 2. 19. 14:41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2020년 2월 독회의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사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이 신인의 소설집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하나는 묘사의 기법적 이채로움이다. 그는 얼핏 보면 동떨어져 있는 사물들, 즉 의미 연관이 부족한 표지들을 끌어 모으면서, 그들을 상호반사시켜 하나의 의미적 양상을 길어내고 있다. 이는 오늘날 소설들에 미만해 있는 제유적 기법, 즉 특징적인 표지로 현실을 지시하는 방식과 유사한 것 같지만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그런 제유적 기법에 반대한다는 것을 페도라헬맷을 대신하지 못하는 사건을 통해 은근히 표명하고 있다. 이 작가의 기법이 제유적 기법과 공유하는 것은 부분적 표지를 끌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적 표지들은 대부분 특징적이라기보다 엉뚱하다는 성격이 더 크다. 그 엉뚱한 것들이 상호 반사와 융합을 통해 하나의 의미양상을 끌어낸다는 것은 제유적인 것이 아니라 환유적인 기법이다. 이는 한국소설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소설적 묘사 방식이다(물론 시에서는 작고한 오규원 선생의 환유적 시쓰기의 표명 이래 매우 풍부한 실례들을 축적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러한 작가의 기법이, 작가가 첫 소설에서 은령을 통해 제시했던 진화론의 새로운 관점, 즉 진화는 우연한 것들의 브리콜라쥬를 통한 변이라는 관점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현대 과학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문학적 형식과 주제의 긴밀한 조응을 그가 의식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인에게서 기대하는 성실성의 일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