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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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소설읽기

리얼리즘의 귀환

비평쟁이 괴리 2021. 3. 23. 02:03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2회 중 세 번째 독회인 20213월 독회'의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글의 일부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전반적 인상

이번 달 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오른 두 편의 장편소설은 모두 사실에 입각하고 사실의 의미를 규명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 작품들이다. 이는 어쩌면 리얼리즘의 귀환의 작은 기미로 감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문학은 전 시대의 주도적 경향이었던 사실주의적 추세를 거부하고 주관적 심성 안에 담긴 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데 주력하였으며, 그 경향이 심화되는 가운데 오늘날 판타지가 미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물론 사실의 규명을 표방한 작품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들이 보여준 사실에 대한 애달픈 집착은, 미리 선악을 정해 놓은 상태에서 국지적 사례들을 들어 현실을 비판하는 모양으로 나타나기 일쑤였다. 그런 태도는 사실의 전횡이지 사실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사실을 미지의 대상으로 놓고 공들여 탐구하는 사람에게만 사실주의의 길은 제대로 열린다. 사실 지난 세기의 사실주의가 패퇴한 것은 바로 그런 기본 원칙을 몰각하고 특정한 관념론의 조명 하에 현상을 제멋대로 설명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 저항한 작은 진실들의 세계 역시, 그만의 작은 관념의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을 꼬물거리고 마는 게 아니었던가, 라는 걱정이 심해져 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제 안의 주머니쥐의 뒤통수를 쓰다듬는 일을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 저자거리를 잠행하든 활보하든 바깥 세상의 공기를 호흡하며 그것과 격투하는 소설들도 문학 구장의 전광판에 존재의 이유를 공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이 단어를 오늘 부쩍 쓰고 있는데), 한국문학은 그런 사실주의의 전통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김동인, 염상섭, 채만식에서부터 최인훈, 박경리, 이청준을 거쳐 유동우, 윤흥길, 김원우, 임철우, 김영현, 정인화, 석정남으로 퍼져 나간 그 맥락이 되살아나길 바라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