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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학상 제52회 2021년 제 2회 독회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동인문학상 제52회 2021년 제 2회 독회

비평쟁이 괴리 2021. 2. 11. 14:12

동인문학상 심사 독회의 발표 형식이 바뀌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독회 때마다 심사위원들이 올리는 심사의견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이원화하기로 했다. 짧은 심사평 형식으로 심사의견을 적는 방식과 '20자 내 한줄 심사평+작품 내 인용문+읽는 포인트'를  묶어서 내는 방식 둘이다.

둘째, 위의 심사의견은 모두 조선일보 인터넷 판에 공개된다. 대신 종이지면에는 후보작(들) 각각에 대해서 전체 심사위원회의 이름으로 작품 평이 시차를 두고 올라간다. 

위의 두 번째 원칙으로 인해, 아직 심사위원회 심사평이 올라가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공개하는 심사의견 역시 보류한다. 

조선일보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리는 일도 같은 원칙 하에 진행될 것이다.

우선 이번 독회에서 얻은 전반적 인상에 대해 아래에 기술한다.

▶ 전반적 인상

최근 10년 사이에 모종의 작가군()이 형성되었다는 인상을 말해보고자 한다. 대개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일에 강렬한 호기심을 발동하면서, 그들의 눈길이 머무는 지식들을 유용한 정보로 채취하는 능력과 세상의 움직임들의 다양성에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지구적인 상상의 영역을 열어 보이는 솜씨를 엿보게 한다. 이 정도의 촉수와 채집 용량을 가지고 있다면 새로운 소설에 대한 기대로 인한 긴장감을 바짝 죄게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생산물은 아직만족스럽지가 않은 것 같다. 풍부히 채집된 정보들을 잡학의 나열로 써버리거나, 헐리우드 B급 영화들과 비슷하게 사회 이탈자들의 가학적/자학적 향락의 사태를 묘사하는 데에 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매체의 기법적 변형에 몰입하여 언어의 감옥에 갇히는 등, 자신들이 적재한 역량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뒤에 현실의 지배적인 기운에 짓눌린 심각한 무기력이 암울한 정신의 늪을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 표면적인 활달함과 이면의 우울 사이에 연락망이 끊긴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잠재된 자원을 풍부히 확보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소모하기보다, 세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창조를 위한 고독한 노동의 에너지로 연소시키기를 바란다. 아마도 관건은 풀어진 연락망을 여하히 당기느냐에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제 풀에 지치려고 소설쓰기라는 힘든 노역을 견디는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또 하나, 언제부턴가 지배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소설들에서 아이러니가 증발해버린 듯하다는 느낌이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소설의 근본 성질은 자유이다. 따라서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모든 장르의 원리들을 제것처럼 활용한다. 그런 소설의 자유를 유일하게 규제하는 원칙이 아이러니라고 20세기의 이론가들은 주장해왔다. 아이러니는 스스로의 의지에 반하는 결과에 다다르는 것. 소설은 자유의 이름으로 모든 삶들을, 존재하지 않는 삶까지 포함해, 넘나들 모험의 권한을 얻는 대가로, 최종적으로 그런 모험의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소설은 현재까지는 인류에게만 할당된 소설하는 존재의 가능성을 무한으로까지 늘리는 과정 속에서 그것의 위험과 한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만일 아이러니가 없다면 소설하는 존재는 초월적 존재로 증발해 버리거나 아니면 악마성의 권화로서 지상의 재앙이 될 것이다.

오늘의 소설들에서 아이러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다면, 이는 고전적 이론의 무효성을 고지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 이제 소설에 대한 다른 설명틀이 나올 때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그 변화의 근거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혹은 그러한 현상은, 앞에서 말한 악마성으로의 질주라기보다, 자유의 모험의 사전적 포기를 보여주는 현상으로 해석될 여지는 없는가? 다시 말해 자유의 관념적 표명으로 육체의 상실을 방지하고자 하는 면역적 조치이지는 않는가? 그 조치를 통해서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서의 자유를 기정사실화된 소유물로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