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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시집 읽기

에이드리언 리치의 『문턱 너머 저편』

비평쟁이 괴리 2011. 10. 6. 06:00


외국의 시를 읽고 공감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과 달리 시는 오로지 언어의 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번역은 매개가 아니라 장애가 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클로드 무샤르 교수가 번역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했을 때 내 머리를 때리며 지나간 번개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번역의 불가피성의 문제를 넘어서, ‘내재성이라고 해야 할 그런 성질이다. 우리는 매번 서로의 코드를 확인하고 상대방을 번역하면서 교섭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오류를 범하면서, 계속 그 오류를 고치려고 애쓰면서. 저 옛날 바슐라르가 인식론적 장애물이라고 부른 것은 이제는 번역 장치의 호환성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바슐라르는 저 장애물이 실은 생각의 풍요를 가능케 하는 역동적 상상력의 원천임을 간파하지 않았던가? 그에 기대어 우리는 번역의 심각한 장애는 두 세계의 강력한 공존과 싸움을 의미한다고, 그리고 그 싸움으로 태어날 또 다른 세계의 풍요를 기대케 하는 원천이 된다고 이해하는 역설의 즐거움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사설이 길어졌다.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문턱 너머 저편The Fact of the Doorframe(한지희 역, 대산 세계문학 총서, 103)은 번역되었는 데도 불구하고, 딴 세상의 음료처럼 미묘하게 흡수되는 마력을 지닌 시집이다. 무엇보다도 시인의 교양적 깊이가 시를 읽는 마음을 편하게 가라앉힌다. 그리고 모든 시편에는 시를 쓴다는 게 곧 정직한 삶을 산다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윤리적 감각이 뚜렷한 심줄처럼 새겨져 있다. 독자는 그 윤리의 심줄에 찔려서 내 삶과 내 문학을 되돌아 본다. 그러나 곧바로 그 감각이 나를 벼랑에서 지탱해주는 미더운 동앗줄임을 다시 확인하곤 안도한다. 그의 시는 그러니까 그 편안함과 아찔함 사이를 왕복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중 내 가슴에 가장 시린 전류를 흘려 보낸 시 한편을 적어둔다.

 

북미 대륙의 시간

I

 

내 꿈이 어떤 통제 불능의 이미지도

경계선 너머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징표를 보여주었을 때

나는 길을 걸어가다 알게 되었다

나의 주제가 스스로를 위해서 마름질되었다는 것을

적군이 사용할까 두려워

내가 무엇을 보고하지 않을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II

 

우리가 글로 써놓은 모든 것은

우리에게 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받아들이든지 무시하든지

이것이 그 조건들이다.

시는 결코 역사 밖에

서 있던 적이 없었다.

예술을 초연한 것으로서 찬양하기 위해

또는 우리가 사랑하진 않았지만

죽이고 싶지도 않았던 자들을 고문하기 위해

이십 년 전 타자기로 쳤던 한 줄의 글귀가

스프레이 페인트로 휘갈겨져 벽 위에서 번쩍거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변한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는 그 자리에 서서

우리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글이 가진 특권이다

 

III

 

어느 조용한 여름밤

시골집 창가 옆에

탁자 위 타자기 앞에

앉아 있으려고 노력해보라

너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양

그저 상상만이 커다란 나방처럼,

[아무런] 계획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양 노력해보라

그저 너 자신에게

너의 종족의 삶에 대해

네가 사는 행성의 숨결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말하려고 노력해보라

 

IV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글이 책임을 지게 된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

또는 침묵하기로 선택하는 것.

또는 네가 결코 어떤 선택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 있는 단어들이

[대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글이 가진 특권이다

 

V

 

가령 네가 글을 쓰고 싶다고 하자

다른 여자의 머리칼을

따주고 있는 어떤 여자에 대해서

길게 늘어뜨리거나, 구슬이나 조개껍질로 만든 장신구를 달아

세 가닥으로 땋던가 혹은 콘로형으로 하던가

너는 그 두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길이도 모양도

왜 그녀가 머리를 땋아주기로 결심했는지도

어떤 식으로 행해지는지도

어떤 곳에서 일어나는지도

그곳에서 또 어떤 다른 일이 일어나는지도

 

너는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한다

 

VI

 

시인이여, 자매여, 글은

우리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나름의 시간 속에 놓여 있다.

저항해도 소용없다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콜론타이가 추방되기 전에

로자 룩셈부르크가, 맬컴이

애너 매 아쿼시가, 살해되기 전에,

트레블링카가, 비르케나우가,

히로시마가 [사건을 당하기] 전에, 샤프빌이,

 

비아프라가, 방글라데시가, 보스턴이,

애틀랜타가, 소웨토가, 베이루트가, 아삼이

[사건을 당하기] 전에라고그 얼굴, 그 장소의 이름들은

북미 대륙의 시간을 기록한

연대기에서 추려져 삭제되었다

 

VII

 

나는 이런 생각하고 있다.

마치 사람들의 입에서 빵이 빼앗기듯

사람들의 입에서 말이 강탈된 나라

그곳에서 시인은 단지 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피부색이 검어서, 여자라서, 가난해서 가기도 한다.

나는 우리가 적어놓는 어떤 것이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시기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곳에선 결코 맥락이 주어지지 않는다.

시를 위해서 적어도

난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VIII

 

가끔, 밤에 비행기를 타고

뉴욕 시 상공을 날아가는 동안

나는 이 빛과 어둠의 지대에

들어가도록 부름 받은,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어떤 사자使者가 된 듯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그것은] 비행하면서 떠오른 참 거창한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거창한 생각 아래

내가 씨름해야만 하는 [생각이]

비행기가 성난 듯 활주로에 내려앉은 후

오래된 집 계단을 올라가,

오래된 집 창문 앞에 앉으면

내 가슴을 무너뜨리고 날 침묵 앞에 복종시키는

그 생각이 떠오른다.

 

IX

 

북미 대륙에서 시간은 정체된 채,

단지 몇몇 북미 대륙인의 고통만을 해소해주며

계속 고꾸라진다.

줄리아 데 부르고스가 이렇게 썼다.

내 할아버지가 노예였다는 사실이

슬픔을 준다. [하지만] 그가 노예주였더라면

그것은 내게 수치심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시인의 언어는,

북미 대륙에서,

일천-구백-팔십-삼이라는 연도에

문 위에 걸려 있다.

거의 완벽하게 둥근 달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변화에 대해 말하면서

브롱크스로부터, 할렘 강으로부터

쿼빈의 침수된 마을로부터

노략질당한 묘지로부터

유독가스를 내뿜는 습지로부터, []실험-지대로부터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말하기 시작한다 다시. (1983)

 

 

 

.... 나는 침묵 앞에 복종한다. 오래도록. 그리고 말하려고 애쓴다.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주의자도 이 시와 직면해야 할 것이다. ‘정치하면 신물이 난다고 고개를 젓는탈주의자도.

... 그러나 정치적으로 올바른주의자가 이 시를 언젠가 써먹을지 모른다. ‘고개를 젓는탈주의자가 혹시 그럴지도.(2011.10.06.)

 

원문은 다음과 같다.

 

North American Time

I

 

When my dreams showed signs

of becoming

politically correct

no unruly images

escaping beyond borders

when walking in the street I found my

themes cut out for me

knew what I would not report

for fear of enemies' usage

then I began to wonder

 

II

 

Everything we write

will be used against us

or against those we love.

These are the terms,

take them or leave them.

Poetry never stood a chance

of standing outside history.

One line typed twenty years ago

can be blazed on a wall in spraypaint

to glorify art as detachment

or torture of those we

did not love but also

did not want to kill

 

We move but our words stand

become responsible

for more than we intended

 

and this is verbal privilege

 

III

 

Try sitting at a typewriter

one calm summer evening

at a table by a window

in the country, try pretending

your time does not exist

that you are simply you

that the imagination simply strays

like a great moth, unintentional

try telling yourself

you are not accountable

to the life of your tribe

the breath of your planet

 

IV

 

It doesn't matter what you think.

Words are found responsible

all you can do is choose them

or choose

to remain silent. Or, you never had a choice,

which is why the words that do stand

are responsible

and this is verbal privilege

 

V

 

Suppose you want to write

of a woman braiding

another woman's hair

straight down, or with beads and shells

in three-strand pla,its or corn-rows

you had better know the thickness

the length the pattern

why she decides to braid her hair

how it is done to her

what country it happens in

what else happens in that country

 

You have to know these things

 

VI

 

Poet, sister: words

whether we like it or not

stand in a time of their own.

No use protesting I wrote that

before Kollontai was exiled

Rosa Luxemburg, Malcolm,

Anna Mae Aquash, murdered,

before Treblinka, Birkenau,

Hiroshima, before Sharpeville,

Biafra, Bangla Desh, Boston,

Atlanta, Soweto, Beirut, Assam

-those faces, names of places

sheared from the almanac

of North American time

 

VII

 

I am thinking this in a country

where words are stolen out of mouths

as bread is stolen out of mouths

where poets don't go to jail

for being poets, but for being

dark-skinned, female, poor.

I am writing this in a time

when anything we write

can be used against those we love

where the context is never given

though we try to explain, over and over

For the sake of poetry at least

I need to know these things

 

VIII

 

Sometimes, gliding at night

in a plane over New York City

I have felt like some messenger

called to enter, called to engage

this field of light and darkness.

A grandiose idea, born of flying.

But underneath the grandiose idea

is the thought that what I must engage

after the plane has raged onto the tarmac

after climbing my old stairs, sitting down

at my old window

is meant to break my heart and reduce me to silence.

 

IX

 

In North America time stumbles on

without moving, only releasing

a certain North American pain.

Julia de Burgos wrote:

That my grandfather was a slave

is my grief; had he been a master

that would have been my shame.

A poet's words, hung over a door

in North America, in the year

nineteen-eighty-three.

The almost-full moon rises

timelessly speaking of change

out of the Bronx, the Harlem River

the drowned towns of the Quabbin

the pilfered burial. mounds

the toxic swamps, the testing-grounds

 

and I start to speak again.

 

1983

 

(RICH, Adrienne : The Fact of a Doorframe - Selected Poems 1950-2001, New York London : W.W.Norton & Company, 2002, pp.197~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