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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의 『오늘 아침 단어』 본문

울림의 글/시집 읽기

유희경의 『오늘 아침 단어』

비평쟁이 괴리 2011. 8. 26. 07:27

유희경의 오늘 아침 단어(문학과지성사, 2011)는 일기체의 수필 형식과 사막을 걷는 듯한 기형도풍의 메마른 묘사의 합성을 기본 형태로 삼고 있다. 수필은 자기 확인의 장르이다. 자신의 행적을 되돌아보고 지나친 것을 쳐내고 희미한 것을 강조해 지나온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심리적 안정을 얻고자 하는 운동이다. 일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대부분의 수필이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에 씌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삶에 대한 질문이 있고 고통스러웠던 사건이 있으며, 회오와 반성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것들은 다듬어지게 된다. 다듬어져서 의 개인 유산으로 정돈되어 언어의 서랍 속으로 들어가 보존된다. 그리고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반성조차도 고즈넉한 졸음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것이 일기의 작업이다.

물론 꿈의 작업은 일기의 작업과 정반대가 될 수 있음을, 꿈 꿔 본 사람은 능히 알리라.

유희경 시가 꿈의 작업을 재현하는 건 아니다. 그의 시의 특색은, 일기체의 수필 형식을 취하되, 그곳에서 삶의 정돈을 실행하지 않고 그곳을 돌발적인 의문부호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 의문부호들은 잠에 빠져들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각성제의 기능을 한다. 그의 시편들이, ‘밤에 쓰는 하루의 기록이 되지 않고, 그날의 명령같은 오늘 아침 단어가 된 것은 그러한 사정 때문이다.

그 각성제로서의 아침 단어는 그러나 명료한 과제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것은 조각 난 사건, 느낌, 기억, 예감 들이 무의미의 딴딴한 돌처럼, 가령, 로캉텡의 조약돌이나, 영문 모르게 손에 쥔 차돌, 혹은 이빨을 깨뜨릴 듯한 기세로 씹힌 돌 같은 것으로 출현한다. 시 속 인물들은 그것들의 현신에 문득 몸을 떨었다가 곧바로 그것이 뿜어내는 불투명의 안개 속에 사로잡힌다. 뭔가가 시작될 듯한데, 도시 분명치가 않은 것이다. 시는 바로 이 불투명한 신선함으로 가득 찬다. 시인은 그것을 한편으론 묘사하고 다른 편으론 굴려 본다. 존재 차원과 의미 차원 사이의 왕복 운동이 일어나고 현존에 대한 기대와 의미에 대한 기대가 언제나 결핍된 채로 교번하게 된다. 그러나 그 때문에 기대는 불만 속에서 증폭된다.

유희경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이 왕복 운동을 진행하는 주체는 바로 시 속의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오늘 아침 단어의 비밀은 저 단어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단어를 발견한 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거기 가장 불행한 표정이여. 여기는 네가 실패한 것들로 가득하구나. 나는 구겨진 종이처럼 점점 더 비좁아지고. 책상 위로 몰려나온 그들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그러니 불운은 얼마나 가볍고 단단한지.

 

그렇게 실패한 것들은 스스로가 된다. 내 앞에 구겨진 종이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구겨진 종이처럼 점점 더 비좁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어서,

 

지금은 내가 나를 우는 시간. 손이 손을 만지고 눈이 눈을 만지고 가슴과 등이 스스로 안아버리려는 그때

 

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간은 뭔가가 일어날 듯한데뭔가를 직접 실행하는 순간이다. “내가 나를작동시킴으로써. 는 그래서 무척 외로운 사업에 골몰”(이상)하게 되는데, 외로움으로 시작된 그 사업이 골똘함으로 귀결되는 광경을 독자는 목격하고 얼마간의 체온을 시 속의 와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외로와서 골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업이 실은 골몰해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변모하는 그 존재 전이의 흐름 속에 독자 역시 들어가 보는 것이다. (201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