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짝을 잃은 슬픔은 ... 임선우의 『유령의 마음으로』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짝을 잃은 슬픔은 ... 임선우의 『유령의 마음으로』

비평쟁이 괴리 2022. 6. 22. 10:13

※ 아래 글은 제 53회 동인문학상 독회 6회, 5월 후보선정작에 대한 인터넷용 독회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조선일보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짝을 잃은 슬픔은 몸을 바꾸라고 들쑤시는데...

 

임선우의 유령의 마음으로(민음사, 2022.03)는 변신에 관한 이야기이자 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변신하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자, ‘반려자의 상실로 인한 아픔의 삭힘이다. 이 두 가지 제재는 은밀한 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동반자의 상실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변신에의 욕망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변신의 욕망이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변신은 욕망을 넘어 소재가 되어 실제로 일어난다. 가상현실이 증강현실이 되어 가는 시대에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허구적 도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식물이 되고 싶어도 되지 않아서 채식주의자가 된 인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무와 유령과 해파리와 고양이로 자유롭게 몸을 바꾼다.

하지만 이 변신으로의 길은 아주 다채로운 단계들을 포함하고 있다. 몸을 바꾸려면 궁리도 하고 계획도 하고 준비도 하고 날도 잡아야 하고 의뢰도 해야 하고 대행도 해야 하고, 마침내 실행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주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망설이고 포기하고 실패하고 재도전하고 하는 계기들도 겹친다. 그런 다양한 단계들을 작가는 매우 매끄럽게 표현해서 독자들의 눈을 간질인다.

그러나 실제 이 작품들이 암시하는 중요한 주제는 다른 데에 있다. 여전히 인간들은 사람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데 집착해서, 그 모습이 변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두려워할 뿐 아니라, 주변의 사물들과 동물들과 심지어 자신이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변신체로 취급하여 혹은 그렇게 만들어, “수군거림과 욕설, 배척의 순서를 착실하게 밟아나가”(p.113)면서, 배척하고, 경멸하고 학대하고 돈벌이로 이용하고, 쥐었다 놓았다 하고, 접었다 펼쳤다, 주물렀다 굴렸다 하면서, 타자들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데서 새디스트적 희열을 만끽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런 인간주의의 향락에는 변신을 꿈꾸는 이들까지도 감염되어서, 변신을 감행한 이에게 침을 뱉는 모욕을 가하니, 이는 실로 변신 욕망 뒤에 숨은 자기 고집의 무서운 전면성, 거대한 집단 무의식을 언뜻 엿보는 공포에 직면케 한다. 그 공포는, 소위 N번 방이 그런 현대인의 욕망이 극단화된 곳이지, 느닷없이 어떤 악마가 출현한 장소가 아니다, 라는 깨달음까지도 유도할 수 있다.

작가의 글쓰기는 그 공포를 날쌔게 스쳐간다.

 

의뢰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내가 감독에게 말했다. 감독은 아까 전부터 사이트 의뢰 게시판을 새로 고침 중이었다. 나를 지키려고 남을 해치는 사람들이요. 주경아, 그건 모두가 그래. 감독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p.193)

 

과 같은 지나가는 말은 요점을 짚으면서 그걸 단순화한다. 요컨대 평범화한다. “악의 평범성을 말한 사람이 한나 아렌트였던가? 하지만 이 평범성을 절실히 느끼기 위해서는 이 평범함을 단순하게가 아니라 집요하게, 복잡하게, 지긋지긋하게 파헤쳐야 할 경우도 만나야만 할 것이다. 스스로 잠시나마 자기 고집을 버리는 것, 그것을 작가는 헛것이 되는 것으로, 유령의 마음으로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에만, 세상의 타자들을, 온생명을, 동등한 정신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자니, 유령의 마음이 유령의 실존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지구상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는 하세월을 앞두고 있다.

그래도 시간이 기다려주고 있으니, 그게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