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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숙의 『이혼 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본문

울림의 글/평론과 연구

소현숙의 『이혼 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비평쟁이 괴리 2021. 1. 11. 06:31

우연히 읽게 된 소현숙의 이혼 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 근대적 이혼제도의 도입과 젠더(역사비평사, 2017)는 보기 드문 근대사 연구의 수작이다. 1910년대의 이혼 소송 사건들을 통해서 당시 조선 여성들의 일상사를 복원한 이 연구는 세 가지 점에서 특히 주목을 요한다.

첫째. 한 시대의 역사를 제도와 정치의 반영으로 보는 관점을 벗어나 제도와 욕망의 길항 관계와 그 양상들의 탐구로 나아갔다는 것. 그럼으로써 역사는 주어진 변수계산 값이기를 그치고, 그 자체 끊임없이 생동하는 투쟁과 협상의 과정이라는 깨달음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 근대사는 제국주의의 만행이 자행된 수난의 역사라는 관점과 나라를 구하고자 불같이 일어선 조선 민중의 항거의 역사라는 관점을 동시에 넘어설 수 있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근대-근대, 혹은 순응-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제도와 욕망 사이의 길항자체가 생성시키는 다층적인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한국 여성의 진화적 궤적을 그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볼 관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여성사 연구가 여성 일반에게 가해진 억압과 배제, 그리고 그에 대한 각성과 항거의 역사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이 연구는 방금 말했듯, 가해/피해, 야만/각성의 이분법적 도식을 거부한다. 문제는 그 빗금이 명확하게 그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중층적으로 다양하게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빗금의 양편 항목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빗금들 자체의 운동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살필 때, 빗금은 딱딱한 단절선이 아니라 무한히 굽어지고 엉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삶의 한복판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며 각성적으로 변모해가는 그런 여성들의 삶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특별한 유명인사들과 그들의 행적을 살피는 데서 벗어나 보통사람들, 이른바 구여성들의 일상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웠다는 것이다. 소위 신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괄호쳐 두어야만 했던 그들을 역사의 주 무대로 불러온 것이다.

셋째, 실증적 자료의 전방위적 편재성에 착안하여, 그런 깨달음의 효용성을 실감하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별한 인사들이 아니라 보통 여성들의 생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발언이나 저작물 혹은 기사들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삶의 현장에서 남긴 것들을 모두 데이터로 가져와 적절한 가공 과정을 거쳐서 해석해 내야 한다는 것을 간파하였고, ‘이혼 소송의 기록들을 감정과 욕망과 의지의 수행적 사연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하였으니, 그를 통해, 20세기 초엽의 조선 여성들의 감정-의식-동경-생활을 하나로 통일시킬 용어로서 프랑스인들이 개발한 망탈리테mentalité’의 역선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역사학 쪽에서 이 연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 책이 한국문학 연구의 장에 썩 계발적인 충격을 주리라 믿는다. 특히 한국 여성사를 부단한 저항의 역사로서 구성하기 위해 끈질기게 싸워 온 여성주의자들과 한국 근대 문학의 역사를 문화 제도 이식의 역사로 바라보면서 거의 20년 이상 한국문학의 통시적 탐구를 지배해 온 문화사 연구종사자들이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란다. 이 책은 그들이 그동안의 열광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무엇들을 놓쳤는지를 암시하면서, 근본적으로 연구의 관점과 방법론이 재형성되어야 함을 촉구하는 단서들을 적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의 문화사가 문학을 분실하였고, 그것이 궁극적 침체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각별히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도와 욕망의 길항을 살핀다는 관점을 한 단계 상층 이동을 시키면 거기에 문화와 문학이 치열하게 서로를 주고받는 장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