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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산의 『달팽이 사냥』 본문

울림의 글/평론과 연구

김대산의 『달팽이 사냥』

비평쟁이 괴리 2011. 11. 11. 09:23

김대산의 달팽이 사냥(문학과지성사, 2011)은 젊은 비평가의 첫 책답게 온몸으로 밀고 나간 책이다. 그는 그가 만난 작품들을 통째로 자신의 생각 전체와 맞부딪친다. 씨름, 레슬링, 스모, 혹은 미셀 레리스가 죽음을 담보로 한다는 그 존재론적 긴박성에 매료되었던 투우로서의 글쓰기”(Michel Leiris, L'age d'homme, Paris : Gallimard, 1946.) 물론 이 씨름, 이 투우는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요철에 자신을 맞추어 하나의 완벽한 통일체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의 운동이다. 그것을 그는 동일성과 차이의 관계적 역설을 포함하는 변형의 과정이라 정의한다: “‘소설은 달팽이다라는 은유가 가진 은밀함은 상징과 의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춤과 드러냄의 놀이에서 이미 찾아질 수 있는 것이며, 상징과 의미가 이미지에 의하여 매개되어 있다면, 그때 사유 속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의 현상은 무엇인가를 감추면서 드러내거나 드러내면서 감추고 있는 현상이다”(25.) 내가 읽기에 그의 비평은 작품이 감춘 것을 드러내고, 작품이 드러낸 것을 감추어서, 모든 작품의 요소와 그 요소들의 결합에 일종의 반-요소들과 반-결합을 창출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통일체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실행이다.

이 드잡이 방식은 또한 단일한 것은 아니다. 그는 윤후명의 소설에 대해서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가 하면, 이인성의 소설에 대해서는, ‘햄릿’, ‘돈키호테’, ‘둘시네아’, ‘오필리어의 네 항목을 부표처럼 설치한 다음, 그 넷 사이에 놓인 가상의 선을 단김에, 어떤 뒤돌아봄도 없이 역영(力泳)한다. 그리고 갑자기 수면 위로 얼굴을 솟구치고는 큰 숨을 토해낸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계속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느낌을 주던 서사는 꿈, 환상, 몽상적 분위기로부터 벗어나 단번에 현실로 솟아오르는 급작스런 도약을 이루는데, 바로 여기서 주인공의 전체적 인격의 변환을 읽어낼 수 있다”(76.)

인용문의 단번에는 소설가에게가 아니라 비평가에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통째로 밀고 나간 그의 비평은 매개를 개의치 않는다. 그가 이인성 소설의 사이에 를 매개로 설정해 놓았던 때조차, 그는 곧바로, ‘사이에, 다시 말해, 한 줄에 끼워 넣어서, 매개자의 고유한 장소적 특성을 없앤다. 그리곤 말한다. “‘는 관계성 자체에 대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젊은이의 글쓰기는 그래서 뜨겁다. 그것은 들끓음의 현상 자체로서 폭포처럼 쏟아진다. 때로 거기에서 전혀 새로운 화학식의 용암 줄기가 쏟아져 처음 보는 탑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 이 열수 옆에 서식하는 새로운 생물의 출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달팽이 사냥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런 기대로 꿈틀거린다. 그가 지금 한국문학의 구도 안에서 가장 난해한 작가들(이인성, 배수아, 조하형, 한유주)에게 특별히 비평적 에너지를 쏟아 부은 사실 만으로도 그런 기대는 이미 전진하고 있다. (201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