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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 - 구광모의 『친일문학에서 항일문학으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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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 - 구광모의 『친일문학에서 항일문학으로』

비평쟁이 괴리 2022. 9. 11. 11:21

※ 아래 글은, '더 칼럼니스트'라고 하는 인터넷 고급교양미디어(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인문적 소통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마련된 웹사이트)에 '월평'으로 게재된 글이다.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글이 본래 실린 곳의 링크는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1291 

 

친일문학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 - 더칼럼니스트

이제껏 볼수 없었던 친일문학 연구서구광모의 『친일문학에서 항일문학으로』(조명문화사)는 지금까지의 한국문학 연구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희귀한 연구로서 기록될 것이다. 아니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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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

구광모의 친일문학에서 항일문학으로(조명문화사, 2022.07)는 지금까지의 한국문학연구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희귀한 연구로서 기록될 것이다. 아니 연구사적 가치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이 책은 문학의 정치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한국의 독자들을 지금까지의 해석에 대한 근본적인 의혹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다름 아니라 친일문학인이야기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해 한반도가 강제로 점령된 이래,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들은 일본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그 굴욕의 기간이 무려 36년이었다. 이 장기지속은 피식민지의 삶과 일상을 동일시하게끔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일제는 조선인들이 점령 상황을 자연 상태로 받아들이고 그에 협력하게끔 유도해 갔다. 그러한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문인들을 포함한 다수의 지도자급 조선인 인사들이 동원되었고, 그들은 저마다 다양하고도 복잡한 심정으로 일제의 지시에 복종하게 되었다.

지식인의 친일은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이른바 내선일체론이라는 피갈음의 논리로 조선인을 일본에 협력하도록 회유하는 것이었다. 이는 나쁜 피 박멸이라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보다 고단수의 책략이었다. 다른 하나는 일제가 아시아 전체를 점령하겠다는 야욕을 표출하면서 전쟁 찬양 및 조선인들의 징용 및 징병 독려 행위를 지식인들에게 그 선동을 강요하는 방향이었다.

이 둘은 최종적으로 근대의 초극(超克)’이라는 아젠다를 바탕으로 대동아공영권의 청사진을 그리는 목표로 합일하였다.

그러나 식민지 상황의 일상적 침윤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조선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본을 경유해 본격적으로 도입된 근대에 대한 지식은 조선인의 자주독립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으켰고, 그것은 이미 3.1운동으로 폭발한 바 있었다. 비록 3.1운동은 폭력적 탄압으로 좌절되었지만 근대에 대한 동경은 조선인의 자율적 존재성에 대한 신념을 유지시켰다. 바로 이것이 후발국들에 있어서 민족과 근대가 동일시되는 기본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그들은 환상 속의 원형-조선도 만들었고, 훗날 한국인의 삶의 기본 질료가 될 문자, 한글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에도 성심을 다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이 근대에 대한 인지와 동경으로부터 촉발된 것이라면, 이는 일제가 193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개진한 근대 초극의 논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브로 조선의 문사들은 친일 행위에 가담하게 되었고, 채만식의 표현을 빌리면, “민족의 죄인이 되어가는 자신의 행보를 속수무책으로 이어나갔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독립의 도래를 예감할 어떤 빛도 보이지 않은 상태로 식민지 상황이 꾸준히 강화되어 간 사정에 있었다. 1940년대 쯤이면 조선의 지식 청년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다투어 일본에 유학가는 건 물론이고(윤동주는 강렬한 자주의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일을 위해 창씨(創氏)를 수락해야 했다. 그 치욕은 그로 하여금 참회록을 쓰게 했다. 그러나 참회의 흔적을 남긴 건 그 세대에선 윤동주가 유일했다.), 일본어 문자를 사실상의 모국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당시에 그에 대한 자각이 거의 없었다는 것과 식민지 상황이 자연상태로 굳어져 간 사정은 그대로 정비례했다. 그런 사정은 앞세대의 지식인들의 심리에도 상당한 무게로 침전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내장에 고여 있는 본래의 열망(근대적 조선인으로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완전히 잊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 대한 망각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부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친일 행위에 노골적으로 가담하는 순간에조차, 본원적 욕망과의 갈등을 앓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가정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 갈등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앓고 있었다면, 그들은 문자 그대로 친일 행위에 몰입하기보다 무언가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구광모 교수의 친일문학에서 항일문학으로는 이러한 추론과 유사한 방향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2005년 대통령 소속 정부기관으로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 규명위원회가 2009친일반민족행위 문인으로 발표한 31명의 작품 중에서 친일반민족 작품으로 판정한 시138편 전체를 대상으로”, 그 작품들에 담긴 친일표현의 실질적인 의도와 의미를 재조사한다.

그의 조사는 크게 보아 두 가지 기준에 근거해 있다. 첫째, 친일 표현은 곧바로 반민족 행위라는 등식에서 두 대응 항목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즉 친일의 주제나 감성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조선인들을 탄압하거나 사지에 몰아넣는 반민족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문학작품의 근본적인 애매모호성에 근거해, 드러난 의미와 숨은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 한꺼번에 적용된 한 편의 사례를 소개한다.

1941128진주만 공습으로 알려진 일왕의 대동아 전쟁 선포일에 즈음하여 김기진(김팔봉)의 아세아의 피가 총독부의 요청으로 제작되어 게재되었다. 그 시는 서태평양 바다 위에서 / ,영 두 나라와 전쟁상태에 들어간 일로부터 시작해, 미영 타도를 외치고 있기 때문에 외면상으로는 명백한 친일시, “조선인으로서 대동아전쟁을 미화하고 찬양한 최초의 친일시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의 두 가지 측면을 특히 주목한다. 하나는 김기진이 이 시에서 침략전쟁의 미화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이 시는 패권 다툼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에서의 한쪽을 편드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저자의 추정을 연장한다면, ‘영미 침략의 찬양은 일제의 조선침략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 있지만, 이 시는 그럴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민특별법213에 명시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로서 볼 수 없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그리고 그런 추론의 근거로서 일제가 실제로 진주만 공습 당시 침략전쟁의 의도를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든다.

다른 하나는 이 시의 제목 아시아의 피이다. 대 일본의 피라고 하지 않고 아시아의 피라고 했을까? 저자는 여기에서 김기진이 이 시 안에 패권국가에 대한 약소집단의 항변을 담으려 했다고 추정한다. 즉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일본이 아닌 아시아인의 항변을 담음으로써,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우회적으로 공격하려 했다는 것이다. 과연, 시의 마지막 연은 저자의 추정을 뒷받침해준다.

이제 아세아 10억의 인민을 대표해서/ 우리의 절실한 생존권을 옹호하기 위하여/ 영토와 재산의 강탈을 목적하지 않는/ 성전이라는 구절에서 우리의 절실한 생존권영토와 재산의 강탈을 목적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침략전쟁이라기보다 저항전쟁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이는 아시아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약소 공동체의 보편적인 함성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시는 친일의 외양 밑에, 항일의 속내를 감추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저자는 이 시를 보통 정도의 친일표현중간급의 항일감성을 뒤섞은 중용의 비빔밥 전술이 적용된 작품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작품이라는 공식적인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이런 주장에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침략전쟁을 유념하고 쓰지 않았다는 주장은 일본의 대동아 전쟁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념이 독일 및 이탈리아와 공유하고 있었던 파시즘이라는 점, 인종 구별 및 인종청소 방침힘의 우위’, 인간 조종의 공적 정당화(사회진화론) 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동아 전쟁은 개전 자체가 끔찍한 반인류적 전쟁이라고 볼 수 있고, 조선의 지식인이 충분한 이해없이 그에 가담한 꼴이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대 일본대신에 아시아를 제목의 중심 용어로 선택한 까닭이 대동아 공영권에 협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방금 언급한 마지막 연의 표현들이 항일적 감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 그런 반론을 상쇄시킬 수도 있으나, 문제는 그 작품을 접했을 일반 독자들이 그런 숨은 의도를 절묘하게 간취할 수 있는지 여부도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반론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 책이 그만큼 의미심장한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 의견은 게다가 전혀 새로운 것이다. 지금까지의 친일논의는 늘 /안겨의 차원, 즉 친일이냐 아니냐의 문제틀 안에서 공방을 이루었다. 이 책은 그런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켜 좀 더 정교하고 깊은 분석을 요구하는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꼼꼼히 읽어보고 참조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P.S. 저자인 구광모(具光謨) 교수는 본래 문학전공자가 아니라, 수학과 출신으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한 후 오랫동안 행정학과 교수로 교단에 섰다가 정년퇴직한 분이다. 그런 도중에 언젠가인지는 불확실하나 가외로 문학을 전공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고 책날개에 적혀 있다. 만일 이 분이 애초부터 문학 전공이었다면, 한국문학에 대한 상투적 관념에 사로잡혀 이런 연구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국문학연구의 전반적인 불모성을 돌아보게 되어 새삼 모골이 송연해진다. 국문과 교수로 있는 필자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