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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김명인의 「바닷가 물새」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2:55

바닷가 물새

 

바닷가 물새 한 마리. 너무 작아서

하루 종일 헤맨 넓이 몇 평쯤일까.

밀물이 오면

그나마 찍던 발자국도 다 지워져버리고

갯벌은 아득한 물 너비뿐이다

물새. 물살 피해 모래밭 쪽으로 종종쳐

걸음을 옮기다가

생각난 듯 다시 물 가장이로 돌아가

몇 개 발자국 더 찍어본다

황혼은 수평선 쪽이고 아직도 밝은 햇살

구름 위지만

쳐다보는 저무는 바다 어스름이 막 닫아거는

하늘 저쪽 마지막 물길 반짝이는 듯.

(김명인 시집, 길의 침묵, 문학과지성사, 1999)

 

이 풍경은 훤하게 넓어져 가는 운동 자체이다. 시를 읽는 시방도 풍경은 시나브로 넓어져가고만 있다. 이 훤한 넓이가 어디에서 오는가? 저 햇살에서? 아니다. 그것은 바닷가에 발자국을 찍는 물새의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 나온다. 그것이 작기 때문에 그것을 둘러 싼 공간은 더욱 커 보인다. 물새는 스타카토로 움직인다. 때로는 종종거리고, 때로는 깡총대면서.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풍경의 둘레는 꼭 그만큼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럼으로써 스타카토로 연속해서 둘레들이 포개진다. 한편, 이 풍경을 흔들고 있는 물살은 물새의 발자국을 지우면서 동시에 포개진 둘레들의 경계선들도 지운다. 햇살은 이 넓어져가는 운동을 잘 보이게 도와주는 신비의 안경이다. 햇살은 왜 그런 일을 하는가? 물새들의 발자국 찍기는 금세 지워져버리는 도로(徒勞)의 운동이다. 그러나 그 도로의 운동이 없었다면 어떻게 세상이 더 넓어질 수 있었겠는가? 무용한 듯 보이는 움직임이 곧 세상을 변화시키는 움직임인 것이다. 그러니, 물새의 발자국 찍기를 흉내 내어 풍경 저 끝은 하늘 저쪽 마지막 물길 반짝이는 듯하는 것이다. 저물녘의 햇살이 비추이는 것이 바로 이 호응이다. 그것은 어둠을 희미하게 퍼져가는 바탕 빛으로 만든다.(쓴날: 2002.05.01, 발표:주간조선1704, 200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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