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평론과 연구 (10)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윤혜준 교수의 『바로크와 '나'의 탄생 - 햄릿과 친구들 』(문학동네, 2013)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윤교수의 드넓은 교양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바로크와 나를 연결시키는 그 아이디어가 계발적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윤교수와 주고 받은 서신의 내용이다. 윤혜준 교수님, 보내주신 책, > 잘 받았습니다. 바로크 시기에 '나'의 탄생을 보신 것은 매우 흥미로운 착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나'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분열'이 있어야 했다는 점에 착목한다면 윤교수의 관점은 매우 시사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나'의 탄생을 '근대'라는 '존재양식'의 태동과 연결시키는 편인데, 그 근대는 시기적으로는 아주 다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산업혁명기일 수도 있고 르네쌍스기일 ..
※ 아래 글은 지난 해 말, ‘목포 김현 문학관’ 개관일에 행사 장소에서 발표한 것을 수정·보완하고 논문 체제를 부여하여, 『비평문학』(한국비평학회) 제 42집(2011.12.31.)에 게재한 것이다. []안에 묶인 숫자는 미주 번호를 가리킨다. 김현 비평에 있어서의 고향의 문화사적 의미 ■ 두 김현과 하나의 김현 김현은 1942년 진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친 후, 목포로 이사해 그곳에서 서울로 유학가기 전까지 9년 가까이 살았다. 홍정선은 「연보: ‘뜨거운 상징’의 생애」에서 목포를 김현의 “제 2의 고향이자 실질적인 고향”이라고 쓰고 있다. 그런 판단의 근거를 그는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의 기술로 보면 그가 그렇게 판단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우선 김현이 진도 ..
김대산의 『달팽이 사냥』(문학과지성사, 2011)은 젊은 비평가의 첫 책답게 온몸으로 밀고 나간 책이다. 그는 그가 만난 작품들을 통째로 자신의 생각 전체와 맞부딪친다. 씨름, 레슬링, 스모, 혹은 미셀 레리스가 ‘죽음을 담보로 한다’는 그 존재론적 긴박성에 매료되었던 “투우로서의 글쓰기”(Michel Leiris, L'age d'homme, Paris : Gallimard, 1946.) 물론 이 씨름, 이 투우는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요철에 자신을 맞추어 하나의 완벽한 통일체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의 운동이다. 그것을 그는 “동일성과 차이의 관계적 역설을 포함하는 변형의 과정”이라 정의한다: “‘소설은 달팽이다’라는 은유가 가진 은밀함은 상징과 의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춤..
한국문학비평의 딥 임펙트를 위하여 — 벨멩-노엘의 『충격과 교감』이라는 혜성으로부터 퍼져 온 전파의 반향 프랑스의 정신분석비평가인 장 벨맹-노엘Jean Bellemin-Noë̈l 파리 8대학 명예교수가 한국문학작품을 읽고 분석하고 해석한 글들을 모아, 『충격과 교감』(문학과지성사, 2010)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의 제목에 ‘충격’이라는 어사가 포함된 것은 한국문학의 예기치 못했던 비상함에 대한 저자의 느낌을 표현한 것인데, 독자는 그 충격을 표현한 이 글들의 모음이 더 큰 충격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실로 이 책은 희귀한 책이다. 우선 외국 비평가가 한국문학작품을 읽고 이렇게 꼼꼼히 분석한 글들을 사실상 거의 처음으로 접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정신분석..
한국의 인문학은 1945년의 해방과 1950-53년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할 근본적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는다. 해방에 의해서 한국인의 삶의 장래가 그 자신에게로 되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되었으며 분단으로 인해 한국인의 정신적 역량 또한 처참하게 찢겼다. 정명환, 송욱, 박이문, 김붕구, 이기백, 이기문 등 당시의 젊은 인문학자들은 그러한 물질적․정신적 불모지에서 삶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의 초석을 처음부터 새롭게 다지는 일에 착수하였다. 이 작업을 위해 그들이 노력한 일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제 강점 36년을 통해서 한국 안에 뿌리내린 식민주의적 학문 풍토를 지우는 일이었다. 그 작업은 식민주의적 실증주의의 극복이라는 명제로 표현되었다.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