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소설읽기 (103)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어루증의 소설, 자유를 위한 혼돈 조너선 프랜즌Jonathan Franzen, 『자유Freedom』, 홍지수 옮김, 은행나무, 734쪽, 17900원 이 책의 선정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가의 전작인 『인생수정』(2001)이 큰 반향 및 논란을 일으키며,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데다가, 이 소설의 출간이 예고되었을 때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가제본 상태의 책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위해 구입해서 화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작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세인의 예측에 부응하여 폭발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언론에서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 이 작가를 돌발적으로 부각시켜 인터뷰 기사를 실으면서 개략적이나마 작품의 줄거리까지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
과학 소설의 고전으로의 진입 필립 K. 딕Philip K. Dick, 『화성의 타임슬립』, 김상훈역, 폴라북스, 455쪽, 13,500원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는 미국문학이 생산한 “최고로 의미있고 멋있으며 지속적이고 권위있는” 작품들을 출판하는 “비영리출판사”이다. 프랑스의 그 유명한 ‘플레이아드’ 총서를 모델로 했으며, ‘국가 인문 기금’과 ‘포드 재단’을 통해 자본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영리’라고 해서, 무상으로 배급하지는 않는다. 통상 일천 쪽이 넘는 권당 25달러 안팎의 값이 매겨져 있다. 여하튼 2007, 8년에 이 ‘고전총서’의 목록 안에, 과학소설가 필립 케이 딕(Philip K. Dick)의 소설들이 세 권으로 묶여 들어갔다. 딕은 ..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 대한 유쾌한 도전 ― 아이작 아시모프, 『아이, 로봇』, 김옥수 옮김, 우리교육, 2008, 380쪽, 9800원 아이작 아시모프가 기왕에 쓴 로봇에 관한 단편들을 묶어 1950년에 일종의 연작소설집으로 발표한 『아이, 로봇』은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적인 세계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도 유쾌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로봇’과 대면하게 되는데, 특히나 ‘인간’으로서의 인물들과 주인공의 자리를 다투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주 강력한 경쟁자인 타자로서 그를 접하게 된다. 이 ‘경쟁적 타자’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바로 디지털 문명에서의 생명의 존재방식과 직결된다. 그 존재방식이 어떤 윤리를 가리킨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모..
흥미로운 반전의 세계 하진, 『멋진 추락』, 시공사, 376쪽 12,000원 하진은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작가 중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의 하나이다. 그의 소설은 이미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되었다. 이 달에 그의 단편모음집을 소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의 소설이 미국에 이민 간 동북아시안들이 겪는 생활상의 애환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문화의 교섭으로 인해 벌어지는 돌발적인 사고들을 여실하고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좀 더 특별한 이유이다. 그의 단편소설들이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전개방식이 그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단편의 핵심은 ‘반전’에 있다. 이야기가 단순한 만큼 반전이 더욱 중요한 미학적 요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진의 소설들에도 ‘반전’이 없는 게..
순수 개인의 세계를 처음 그리다 「서울 1964년 겨울」이 오늘날에도 젊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1960년대에 등장했을 때, 김승옥의 소설들은 모두가 화려했다. 그것들은 통째로 젊었고 한편 한편이 ‘감수성의 혁명’(유종호)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작품들은 연륜 속에서 썩 점잖아진 듯이 보인다. 이제 젊은 독자들이건 나이 든 독자들이건, 그의 소설들을 생생한 감각으로 읽기보다는 역사 속에 새겨진 한국인의 옛 경험으로, 혹은 지긋한 나이가 되어 되돌아보는 ‘젊은 날의 초상’으로 읽는다. 그 독서에도 당연히 생생함이 있으리라. 그러나 그 강렬함은 ‘의식적’이다. 어떤 거리를 독자의 뇌와 심장 속에서 더듬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미련처럼, 안식처럼, 동경처럼 차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