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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의 『멋진 추락』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하진의 『멋진 추락』

비평쟁이 괴리 2011. 8. 14. 10:52

흥미로운 반전의 세계

 

하진, 멋진 추락, 시공사, 37612,000

 

하진은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작가 중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의 하나이다. 그의 소설은 이미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되었다. 이 달에 그의 단편모음집을 소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의 소설이 미국에 이민 간 동북아시안들이 겪는 생활상의 애환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문화의 교섭으로 인해 벌어지는 돌발적인 사고들을 여실하고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좀 더 특별한 이유이다. 그의 단편소설들이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전개방식이 그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단편의 핵심은 반전에 있다. 이야기가 단순한 만큼 반전이 더욱 중요한 미학적 요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진의 소설들에도 반전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반전은 우리의 단편소설들이 자주 보여주는 것처럼, 결말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는 극적 반전이 아니다. 하진 소설의 반전은 오히려 작품의 도입부부터 예고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고된 반전이라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짜릿한 흥분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반전의 예고성때문에 독자는 작품을 읽는 내내 기묘한 긴장 상태에 있게 되고, 그 긴장 상태 자체가 음미 혹은 성찰의 대상이 된다. 그 점에서 그의 단편소설은 한편으론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충고로 읽히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론 단편을 반성하는 소설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미인의 진정한 반전은 성형수술한 아내의 추한 옛 모습을 긍정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집에 늦게 들어가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사실에 있다. 극적인 것에 오래 길들여져 있는 한국의 소설가들과 독자들이 공히 음미해 볼만한 문제이다. (쓴 날: 2011.3.20.; 발표: 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 책 선정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책, 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