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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듀엘Duels’은 프랑스 제 5TV에서 올해 1월부터 새로 시작한 시리즈 다큐멘타리이다. 두 사람의 경쟁자를 중심으로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짚어가는 기획이다. 어제의 두 경쟁자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와 그를 석방시킨 대리통령이자 대통령 선거에서 그에게 패배했던(그리곤 만델라의 부통령으로 위촉받았다가 후에 사임했던, 또한 1993년 만델라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던) 드 클레르크De Klerk였다. 만델라의 삶과 행적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서 내가 덧붙일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프로 중에 대통령 선거를 끝낸 직후 군중들이 환호하고 춤을 추는 데 따라 몸사위를 덩실거린 만델라의 춤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두고 싶다. 그의 춤은 춤으로 치자면 춤에 관한 어떤 지식도..
지난 해 11월 14~18일 기간에는 문학의학학회의 손명세 교수 부부와 이병훈 교수가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겸해서 방문하였다. 그 분들과 함께 근처의 몇 군데를 구경 다녔는데, 17일에는 유럽 최초로 의료 교육기관이 설립된 몽펠리에Montpellier(바로 여기가 라블레Rabelais가 의사 수업을 받은 곳이다)를 거쳐 발레리Paul Valéry의 「해변의 묘지La cimetière marin」로 유명한 세트Sète로 갔다. 당연히 해변의 묘지에 가서 발레리의 시구를 음미해보고 싶어서였다. 세트는 육지 안으로 깊숙이 파인 내해에 작은 배들이 빼곡 들어차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자주 바다로 놀러나간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예전에 에릭 사티Erik Satie가 태어난 옹플뢰르Honfleur에 갔을 때는..
지난 1월 6일 장 메텔뤼스 Jean Métellus가 타계했다. 그는 아이티의 시인이다. 프랑스의 저널들은 일제히 아이티의 위대한 시인이 돌아갔다는 제목을 단 기사를 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르몽드』지 서평란을 통해 그의 시집을 샀다가, 「서문」에 나의 지인인 클로드 무샤르Claude Mouchard 교수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무샤르 교수에게 그에 대해 물어 보았고, 그가 무샤르 교수와 함께 젊은 시절 의대를 같이 다녔으며, 무샤르 교수가 의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돌아섰다면, 그는 의사도 되면서 시인도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무샤르 교수의 오를레앙 집에서도 한동안 머물렀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사연보다 그..
『중앙 선데이』는 판매자의 집요한 전화 공세에 떠밀려 구독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건 손열음의 칼럼이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젊은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뛰어난 기량의 연주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전달된 소식 외에는 아는 게 없다. 다만 이 사람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은 지금까지도 내 몸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으며, 주일 간격으로 새로 실린 그의 글들과 공명을 한다. 그의 글이 주는 신선함은 그의 음악연주자로서의 체험에서 그대로 낚아 올린 듯 파닥이는 이야기가 전혀 상투적이지 않은 낯선 정보와 한국의 예술가들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생각의 깊이를 동시에 담고 있다는 데서 온다. 오늘자 칼럼만 해도 나는 기준 음정의 미세한 선택적 차이들에 대..
* 이 글은 『연세소식』의 요청에 따라, 백양로에 대한 느낌을 적은 것이다. 백양로를 걷을 때면 나는 세상 먼지를 씻은 마음의 시원함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그런 느낌은 무엇보다도 곧게 뻗은 길의 길쭉함에 그 이름이 연상시키는 청결함이 보태어져 생기는 듯 보인다. 이 한 줄기 길은 당연히 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각 방향을 걸어가는 기분이 저마다 달라 흥미를 자극한다. 북쪽 방향의 길은 정문에서 출발하여 학교의 내부로 잔잔히 스며드는 길이다. 이 길의 저쪽 끝에는 담쟁이 넝쿨로 뒤덮이고 벽돌빛 고담(古淡)한 언더우드관이 함초롬히 앉아 있다. 그 자태가 신비하여 눈앞에 빤히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구름에 감싸여 어떤 까마득한 높이에 떠있는 신기루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감성이 풍부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