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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글

넬슨 만델라의 춤

비평쟁이 괴리 2014. 3. 7. 20:40

 

 

 

듀엘Duels은 프랑스 제 5TV에서 올해 1월부터 새로 시작한 시리즈 다큐멘타리이다. 두 사람의 경쟁자를 중심으로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짚어가는 기획이다. 어제의 두 경쟁자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와 그를 석방시킨 대리통령이자 대통령 선거에서 그에게 패배했던(그리곤 만델라의 부통령으로 위촉받았다가 후에 사임했던, 또한 1993년 만델라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던) 드 클레르크De Klerk였다. 만델라의 삶과 행적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서 내가 덧붙일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프로 중에 대통령 선거를 끝낸 직후 군중들이 환호하고 춤을 추는 데 따라 몸사위를 덩실거린 만델라의 춤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두고 싶다. 그의 춤은 춤으로 치자면 춤에 관한 어떤 지식도 훈련도 없는 농투성이가 겨우 시늉을 하는 그런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 동작과 그 표정은 세상의 어떤 사악한 기운도 다 밀어내버린 순수함 그 자체의 율동이어서,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몸 안에서 저절로 세로토닌이 차오르고 내 얼굴이 미소로 벙그러지던 것이었다.

 

인종차별에 저항하다가 27년이나 감옥살이를 한 사람의 얼굴에서 어떻게 저렇게 한 터럭의 분노도 비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모습에 홀려서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나중에 동영상 파일로도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만델라가 대통령 선거 당시 드 클레르크와 함께 출연한 TV 토론에서 자신의 경쟁상대를 협력자로 지칭하며 손을 잡는 장면과, 차후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날 때 한 연설에서 드 클레르크의 공적을 잊지 않고 언급하여 상대방을 눈시울에 젖게 한 장면이 그의 춤과 함께 내 머리 속에 선명히 남았다.

생각해보면, 만델라는 그의 평화를 적수의 이름으로 이룬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적수가 그를 해방시켰던 각성한 사람이긴 했지만, 만델라는 그를 통하여 인종차별정책을 지지했던 진짜 적들까지도 그의 평화를 향한 동반자의 범주 안에 끌어들이는 일을 해낸 것이다. 진정한 승리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러나 말은 쉽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진화론적으로 모든 생명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할 수 없도록 체질화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진화론의 궁극은 결국 절멸이라는 것을 나는 요즘 절실히 깨닫는다. 그럼에도 진화의 행로에서 우리가 이탈할 수 없는 게 분명하다면, 진화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진화의 법칙 자체를 갱신해나가는 일, 다시 말해, 진화 자체를 진화시켜야 할 일이 생각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과제일 것이다. 만델라는 그에 대한 가장 명확한 범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래는 그의 자서전 중의 일부이다. 감옥에서 나온지 사흘 때 되는 날 소웨토Soweto(남아공 수도 요하네스버그의 흑인거주지역)제일국립은행의 운동장에서 연설했을 때를 기억하는 부분이다. 특별히 눈에 띄었던 대목이라 번역해 본다.

 

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소웨토의 제일국립은행운동장으로 갔다. 우리는 성냥갑같은 집들, 빈민굴, 진창의 도로들이 바글거리고 있는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거기가 남아프리카공화국흑인들의 모태도시인 것이다. 내가 감옥에 가기 전 유일하게 하나의 인간임을 느낄 수 있었던 바로 그곳이다. 소웨토는 커져 있었다. 어떤 곳들은 더 번창하였다. 그러나 압도적인 다수의 인구는 여전히 끔찍한 가난 속에, 물도 전기도 없이 살고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부자 나라의 수치라고 해야 할 수준의 생존을 연명하고 있었다. 많은 곳에서 가난은 내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보다 다 심해져 있었다.

우리는 12만명이 운집해 있는 운동장을 선회하여 한 가운데에 착륙하였다. 운동장은 초만원이었다. 앉거나 선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치 폭발할 것 같았다. 나는 내 말을 듣기 위해 거기에 온 사람들에게, 그들과 함께 있게 된 기쁨을 말했다. 그러나 나는 또한 흑인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그들을 나무랐다. 학생들은 학교로 가야 했고, 범죄는 통제되어야 했다. 나는 범죄자들이 스스로를 자유의 투사인양 선전하며 순박한 사람들을 죽이고 차량에 불지르곤 한다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날강도짓이 우리의 투쟁에 자리를 잡아서는 안 되었다. 시민의식 없는 자유, 평화롭게 살 능력이 없는 자유는 결단코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다.

 

오늘 소웨토로 돌아오니, 제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동시에 저는 아주 깊은 슬픔의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여러분들이 여전히 비인간적인 체제 아래서 고통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스며나는 슬픔입니다. 잘 곳이 없고, 학교에 가질 못하고, 직업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범죄율이 심각한 문제들입니다. [] 소웨토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부심 너머로 저는 제가 저널을 통해서 읽은 범죄 통계로 인해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우리 흑인들이 감내하는 박탈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저는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흑인거주지역에서의 범죄율의 증가는 나쁜 것이며 가장 긴급히 제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선한 마음과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남아프리카 사람들을 두 팔로 얼싸안으며, 다음의 말로 연설을 마쳤다. “아파트헤이드[=남아프리카의 인종 구분 정책 및 그 모든 결과들을 가리킴]를 내던진 사람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인종 차별 없는, 하나된 민주주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한 우리의 도정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표 하나의 원칙에 근거하며 모두가 동일한 선거인 명부에 등록됩니다.” 그것이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카민족회의라 흔히 번역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흑인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1912년 설립되었음]의 소명이었다. 내가 감옥에서 고독한 유폐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내 앞에 두었던 신조였다. 내가 나를 살도록 해준 그 기간 동안 공들여 다가간 목표였다. 그것은 내가 마흔 넷의 나이에 감옥에 들어갔을 때 가장 소중한 꿈으로 간직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젊은이가 아니었다. 나는 71세이고 시간을 허비할 여지가 남아 있질 않았다.

Nelson MANDELA, 자유를 향한 먼 길Un long chemin vers la liberté, traduit par Jean Guiloineau, Paris: Le Livre de Poche, 2013 (Edition originale: 1995), pp.686~87. (쓴 날: 201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