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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연세대학교 문학특기자들의 문집 「과도한 스타일」2011년판이 출간되었다. 거기에 쓴 발문이다. 당신의 적이 당신을 편들 정도로까지 성공합시다. 해마다 치르는 이 발문(跋文)의 지신밟기를 시작하면서 새삼 여러분을 처음 만났던 때의 감회가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모든 가능한 꽃을 내장한 푸른 싹 같았습니다. 동시에 험한 세파를 떠올리면 어떤 망울이 여러분의 몸으로부터 솟아나든 무난히 개화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이엔 문학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세상과 여러분 사이의 온갖 상호작용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건 무엇보다도 문학이란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확정된 가치를 부여받을 수가 없다는 현대 예술의 본질과 근본적인 차원에서 맞닿아 있..
마드리드의 ‘소피아 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에 간 건 지난 해 12월 15일이다. 이 미술관의 큐레이터들로 보이는 Manuel J. Borja-Ville, Jésus Carrillo, Rosario Peiró가 만든 『뮤제오 나시오날 센트로 데 아르테 콜렉션을 읽는 열쇠, 제 1부』(2010)[제 2부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듯하다]에 의하면, ‘현대예술’을 전시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출발할 때부터 “역사의 문제적 성격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다만, 그 역사에 대해 “확정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는 거부”하면서. 그렇게 해서, “이 미술관에 대한 체험은 무엇보다도 차이와 불연속에 대한 체험, 즉 현재와 과거 사이에 명백하고 뚜..
아감벤Giorgio Agamben은 「표정」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표정의 나타남은 언어 자체의 나타남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떠한 실제적인 내용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 혹은 세계의 이런 저런 모습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저 열림일 뿐인 것이다. 소통가능성일 뿐이다. 표정의 빛 안으로 걸어들어간다는 것은 이 열림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견딘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렇게 표정은 무엇보다도 나타남의 ‘열정passion’, 언어의 열정이다. 자연은 그가 언어에 의해 드러나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 표정을 획득한다.(아감벤, 「표정Le Visage」, 『목적 없는 수단들 – 정치에 대한 노트 Moyens sans fins – Notes sur la politiq..
터키 출장 관계로 뒤늦게 적는다. 망각으로 인한 손실이 크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14,15일, 이청준 선생 3주기 추모 행사 차 장흥에 다녀왔다. 첫날의 ‘이청준 3주기 추모 문학심포지엄’은 ‘장흥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는데, 마침 장흥이 ‘문학특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한국문학특구포럼’이 이어 진행되어서, 아주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참석한 성대한 잔치가 되었다. 또한 박정환 화백이 빚은 이청준 선생 흉상이 완성되어서 공중에 공개하고 사모님께 전달하는 의식이 곁들여졌다. 심포지엄에서 죽마고우인 민득영 선생이 이청준 선생의 호 ‘미백(未白)’이 탄생한 경위를 들려주었다. 이청준 선생과 민득영 선생 등이 이청준 선생의 어머님을 뵈러 갔을 때, 마침 정신이 돌아오셨던 어머니가, “오메, 내 자석 머리가 ..
9월 30일, 목포문학관 ‘김현관’이 개관하여, 문학과지성사의 식구들이 대거 원족을 했다. 1995년 김현 선생 흉상을 그곳에 세울 때로부터 16년만이었다. 그 동안 문학관은 장소를 옮겨 새 단장을 했다. 나는 2008년 말 ‘작가회의 목포 지부’의 초청으로 김현 선생에 관한 얘기를 하러 목포에 갔을 때 이미 구경하긴 했는데 다시 보니, 역시 잘 꾸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 이미 들어 있던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선생들의 각 ‘관’이 왕들의 무덤처럼 근사하게 차려져 있었다. ‘김현관’은 김치수·한순미 선생이 뽑고 다듬은 글을 중심 재료로 해서 박정환·신옥주 부부가 꾸몄다고 하는데, 마치 천체관 같았다. 거기 심어진 글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사방에 반짝이며 서서히 이동하면서 구경 간 이의 혼을 시나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