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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나의 시 한 행은 나의 피 한 방울 -장 리스타트(Jean Ristat) 에밀 시오랑은 말한다:“인간들은 왜 피 흘리며 씌어진 작품들 앞에서 감탄을 아끼지 않는가? 그것이 그들에게 고통을 면제해주거나 혹은 면제해준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이 하는 말 뒤로 피와 눈물을 보고 싶어한다. 군중이 외치는 감탄사는 사디즘의 발로이다.”(『절망의 끝에서』, 김정숙 역, 도서출판 강, 1997, p.143) 그러나 우리는, 다시 말해, 한국의 독자들은, 피 흘린 작품 앞에서 감동을 유보할 수 없다. 우리에게 그런 작품은 너무나 희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을 면제받는 환상을 품기에 앞서 고통 그 자체에 직면해 본 경험을 만나기 힘들다. 물론 글들은 항상 민족의 고통, 타인의 고통, 자신의 고통을 말한..
풍경은 납빛으로 가라앉고, 의식은 풀어지고,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날」『문학과사회』(1999 봄)은 아무런 소설적 긴장을 자아내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논문 자료를 건네주기 위해 애인을 기다리는 카페 ‘비유티풀 데이’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빠져든 1시간 반 너머의 ‘나’의 상념은 하냥 단조롭고 “한없이 늘어”지기만 한다. 내 상념의 바닥에 반사된 창 밖의 풍경은 사건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얼핏 보아서는 ‘나’와 ‘그녀’의 무의미한 관계를 조금 틀만 바꾸었을 뿐, 되풀이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텍스트의 끝자락은 어떤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바깥엔 우중충한 장마비가 하염없이 풍경을 흐려놓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좋은 날”임을 느끼고 그녀는 “소리 높여 웃기 시작”한다. 위기도,..
신세대란 실재하는가? 만일 그것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세대 간의 갈등을 가리키는 표지라면, 그 단어는, 하물며 ‘신인류’라는 일본산 신조어는 더욱더, 사실상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임계점에 달한 문화산업이 판로 개척을 위해 만들어 낸 흡인성 유행어라는 혐의가 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실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그렇게 인공적으로 생산된 그것이, 탄생의 순간부터 산업의 무서운 확산력에 힘입어, 이 세상의 전역에 아카시아처럼 뿌리내리고 번식하지는 않았을까? 그럼으로써 그 존재 자체가 또 하나의 자연이 되지는 않았을까? 백민석의 『헤이, 우리 소풍간다』(문학과지성사, 1995)는 신세대란 실재하며, 그것은 문화를 먹고 자란 세대를 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숲 속을 뛰놀..
김운하는 이 소설, 『137개의 미로 카드』(문학과지성사, 2001) 에 그가 가진 지식을 몽땅 쏟아 부었다.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소설의 광주리에 넘쳐 난 것은 박식의 잡동사니들이 아니다. 이 소설은 차라리 용광로이고, 그 안에는 수십 년에 걸친 한국 지식사의 핵심을 관통하겠다는 의지가 끓어 넘치고 있다. 그 의지는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고 내가 처해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최상의 인식을 향해 이글거린다. 그러나 최상의 인식을 야금(冶金)해내는 일은 실상 이 용광로의 몫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저 최상의 인식을 향한 의지를 절망의 화염 속에서 무참히 녹여버리고 있다. 그 최상의 인식 자체가 바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텍스트를 철학으로부터 소설로 이동시킨다. 분명, 이 소설..
젊은 세대의 작품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 봄에 발표된 작품들만을 나열한다 해도 그것은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내가 관심 있게 읽은 것들은 김영하 「거울에 대한 명상」(『리뷰』 95 봄), 김찬기 「시인 또는 세시 반」(『현대문학』 95. 4), 김환 「비막(飛膜)을 펼쳐라」(『문학과 사회』, 95 봄), 박성원 「사라세니아」(『세계의 문학』, 95 봄);「이상(異常), 이상(李箱), 이상(理想)」(『황해문화』, 95 봄), 배수아 「검은 늑대의 무리」(『현대문학』, 95. 3);「랩소디 인 블루」(『소설과 사상』, 95 봄), 한강 「저녁빛」(『문학과사회』, 95 봄)이다. 이 목록(우리는 여기에 송경아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은 20대 중반, 30대 초반의 신진 작가들이 한국문학의 분포도에서 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