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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산 체험으로부터 솟구치는 역동적인 생각의 파도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이한중 옮김, 한겨레 출판, 15.4x22.4cm, 18,000원 『동물농장』과 『1984년』의 작가 조지 오웰은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이다. 실천적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자신이 가진 지적·언어적 능력 및 기능을 세계의 갱신을 위해 싸우고 있는 자신의 삶에 최대한도로 밀착시키는 사람이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나는 왜 쓰는가」)와 같은 구절이 그대로 가리키듯 그에게 삶과 글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어지는 문단에서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집단적 이상심리로부터 개인의식의 저항으로 ―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사, 2010, 315쪽, 11,000원) 임철우의 소설은 1980년 광주항쟁과 더불어 태어났다. 작가는 그 사건을 현장에서 겪었고 그 의미를 캐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는 말 그대로 5월 광주의 모든 것을 소설의 광주리 안에 담으려 하였다. 그는 그것의 필연성과 우연성이 혼재한 양상을 동시에 포착하려 하였다. 또한 그것의 정치‧사회적 측면을 넘어서 집단 심리의 심층에까지 다다르려 하였다. 그리하여, 광주항쟁을 총체적으로 재현한 『봄날』(1997)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후 임철우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듯이 보였으며, 꽤 오랫동안 침묵에 빠졌다. 『등대』와 『백년여관』을 상자했으나 언어 훈련의 성격이 강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유명한 시구를 지은 시인은 정현종이다. 여기서 ‘섬’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광장’이라고 부른다면, 섬은 그 광장에 대조되는 장소, 즉 광장 속에 감추어진 모종의 밀실, 고독의 장소일 것이다. 이 고독의 장소는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다. 시인이 그 이름을 불러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곳이 되었는데, 아무도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성질이 다른, 성질이 더러운 또 다른 고독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은 이쪽 고독이 더 일반적이다. 가령, 가수 패티김이 “고독에 몸부림칠 때”라고 울부짖을 때, 그 고독은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 노래는 만남이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임을 강조한다. 누군가와 ..
미셀 세로(Michel Serrault)가 주연한 「버터플라이 Le papillon」가 상영된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그가 타계했을 때(2007.07.29) 프랑스 미디어들의 집중적인, 무척 경건했던 추모가 생각이 났다. 우리의 미디어도 언젠가는 연예인들을, 그들의 사생활을 들추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그의 생의 예술적 의미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조명하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자. 여하튼 미셀 세로 생각을 하다가 그가 말년을 지낸 옹플뢰르(Honfleur)가 생각이 났고, 권오룡, 이인성, 홍정선, 김태동과 함께 재작년 4월에 그곳을 여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쁜 골목길들이 얼키설켜 있는 언덕 그리고 뭍 안쪽으로 길쭉이 들어온 내해의 밤풍경이 무척 매혹적인 곳이다. 그런데 밤에 우연히 들른 재즈 바에서 한..
‘콜레쥬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서의 푸코Foucault의 마지막 강의록,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출간되었다고 ‘르 몽드’지가 전한다. 그와 절친한 친구였던 역사학자 폴 벤느Paul Veyne의 인터뷰가 서평과 함께 실려 있는데, 푸코 강의실의 분위기를 회상하고 있다. 특별히 인상적인 점 두 가지. 첫째, 무수한 청중이 그의 강의실에 몰려 들었다는 것. 다른 교수들의 방청자가 25명일 때 그의 청중은 1,000명이었다는 것이다! 푸코가 아닌 교수들의 비애가 둑 위를 찰랑거리는 장마비 같았겠다. 그들 입장에 서서 반추하니 참 처연스럽다. 강의를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더불어 차라리 푸코를 들으러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일었으리라. 어쨌든 또 하나 인상적인 건, 푸코의 강의 ..
지난 월요일(2009.01.12) 이성복 시인이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내가 쓴 시, 내가 쓸 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새로운 창작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시적 창조는 "중간이나 종합이 아니라 위", "변증법이 아니라 '차원의 이동'"임을 강조하였다. "중간이나 종합이 아니라 위"라는 말은 2차원 평면에서 보면 중간과 종합, 중용과 변증법만이 보이지만, 3차원에서 보면 극단과 중용과 종합이 모두 위의 다른 차원에서 보인다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 그는 그러한 새로운 차원이 가시적인 차원 아래에 말려 있다고도 하였다. 헬리콥터에서 보면 지상의 호스는 하나의 선에 지나지 않지만 그 호스 위를 기어가는 개미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면이라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비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