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

비평쟁이 괴리 2011. 8. 14. 09:55

집단적 이상심리로부터 개인의식의 저항으로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사, 2010, 315, 11,000)

 

임철우의 소설은 1980년 광주항쟁과 더불어 태어났다. 작가는 그 사건을 현장에서 겪었고 그 의미를 캐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는 말 그대로 5월 광주의 모든 것을 소설의 광주리 안에 담으려 하였다. 그는 그것의 필연성과 우연성이 혼재한 양상을 동시에 포착하려 하였다. 또한 그것의 정치사회적 측면을 넘어서 집단 심리의 심층에까지 다다르려 하였다. 그리하여, 광주항쟁을 총체적으로 재현한 봄날(1997)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후 임철우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듯이 보였으며, 꽤 오랫동안 침묵에 빠졌다. 등대백년여관을 상자했으나 언어 훈련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 이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를 통해 임철우는 자신의 필력이 결코 소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야가 한층 넓어지고 언어의식이 깊어졌음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가 시종 천착해 오던 집단적 이상심리(광기폭력공포섬망)와 개인적 합리화 사이의 미묘한 유착이라는 한국사회의 보편적 병리 현상이 스스로 화농해 개인의식의 저항으로 터져 나오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별어곡이라는 한 공간에서 벌어진 네 편의 삶을, 가을, 여름, 겨울, 봄이라는 약간 어긋난 계절의 흐름 속에 배치하면서, 리바이어던과 같은 삶 속에서 사는 이유는 바로 그 삶의 이유를 캐묻는 과정 속에 놓여 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그 과정은 지나온 삶에 대한 자발적 망각의 몸부림과 그 망각의 울타리를 뚫고 솟아나는 생생한 실상들의 기억과 망각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자각 들이 한데 엉크러져 들끓는 가운데, 문득 삶이 통째로 어긋나는 환각 속으로 빠졌다가 벗어나는 신체적심리적 경험들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경험들의 묘사의 핍진성이, 그 과정을, 죽지 못해 사는 삶으로부터 진실이 살아있는 삶으로 근본적으로 반전하는 과정으로 만들어 준다. 삶이란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칠수록 빠져들고야 마는 그물이다. 한데 그 그물 속에서 산다는 것은 축축하고 끈적끈적하고도 동시에 환하고 신묘한 일인 것이다. 진심으로 온몸을 다해 체험하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쓴 날: 2010.9.20.; 발표: 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 책 선정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책, 201010)